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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정진영] 광화문의 목사들



신문사 입사 이후 처음으로 아프리카 취재를 다녀왔다. 세렝게티 대평원, 옹고롱고로 분화구, 킬리만자로산, 잔지바르 섬 등을 품은 10박11일간의 탄자니아행은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기자들에게도 아프리카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가는 길이 멀고 일정이 빡빡해 몸은 피곤했지만 새로운 땅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풍광과는 별개로 탄자니아 인구의 30%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현지 안내인에게 전해 듣고 놀랐다. 주요 도시에서는 교회 건물이 자주 보였다.

기독교는 그곳의 주력 종교였다. 한국에서부터 동행한 주한 탄자니아대사관 직원은 아버지가 현지 교회의 담임목사라고 했다. 영국 록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 고향으로 알려진 세계적 휴양지인 잔지바르는 주민의 95%가 무슬림이다. 원래 이슬람 군주국이었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탄자니아와 합병했다. 이곳에서도 한인교회 안내판이 눈에 띄는 등 아프리카에 뻗친 한국교회의 선교역량을 확인했다. 탄자니아의 높은 복음화율과 한국인 선교사들의 열정이 새삼 와닿았다. 탄자니아 정부가 짜놓은 일정대로 움직여야 해 현지 기독교를 더 살필 수 없어 아쉬웠다.

낯선 곳을 간다는 설렘 못지않게 극단의 상황이 펼쳐지는 이 땅을 잠시 떠난다는 후련함에 출발 전부터 기분이 좋았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반목과 갈등, 대립과 충돌에서 벗어나 평온한 느낌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의 날 선 공방에서도 떨어져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여행 중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돌아가면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됐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귀국 직후 주말, 사람들이 모이던 그 거리는 다시 인파로 가득 찼다. 서초동이 여의도로 바뀌었을 뿐 광화문은 그대로였다. 양측의 인파는 줄지 않았고 구호와 주장만 약간 바뀌었을 뿐 집회의 행태는 여전했다.

광화문에는 한국교회의 낯익은 이름들이 집회를 주도했다. 이곳에서는 제1 야당의 유력 정치인들마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는 존재감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조국 사퇴를 주장했던 목사들이 이제 문재인 정권 퇴진 대열의 선봉에 서 있다. 정치 목사가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까지 갖춘 목사들이 됐다. 광화문 목사들을 칭송하며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자처하는 목회자까지 등장했다. 2019년 가을, 몇몇 목사들이 대한민국 정치의 전위에 서 있다.

이들을 보는 교계의 눈은 대체로 착잡한 것 같다. 대놓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건 꺼리지만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이해하면서도 집회의 방식이나 내용 등에 있어서는 마뜩잖게 여긴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는 “목사나 교회가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자기 장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감리교의 한 대형교회 목사는 “특정 인사들이 마치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왜곡되게 비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예장 통합 연합기관의 한 관계자는 “건강한 교회와 목사라면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조언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들의 정치를 위해 교회가 이용당한다는 느낌이 들고 특히 특정 정파의 유익을 위해 교회를 앞세우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목사들이 주도하는 집회에서 거친 언사가 예사로 튀어나오는 등 점차 그악스러워지는 양상을 걱정하는 지적도 많다. 전국 17개 광역시와 226개 시·군·구 기독교연합이 지난 3일 서울시청 앞에서 개최한 ‘한국교회 기도의 날’과 비교해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날 행사처럼 이념과 정치가 아니라 기도를 통해 교회와 민족, 나라를 새롭게 하자는 물결이 차고 넘쳐야 된다는 것이다.

예수는 길 위의 사람이다. 길이나 마찬가지인 마구간에서 태어나 길에서 말씀을 전했고 길에서 아픈 자들을 치유했다. 예루살렘 성 동쪽 ‘비아 돌로로사’란 고난의 길을 거쳐 길가의 언덕 골고다에서 생을 마쳤다. 목사 역시 길 위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성전에만 머무르지 않고 때로는 길로 나와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소명을 지녔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복음을 나누며 하늘과 소통케 하는 역할과 책무를 지녔다. 그 길이 광화문 거리인지는 알 수 없다.

정진영 종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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