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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수 칼럼] 문 대통령, 조국에게 속았나



부인 공소장 보면 판단 설 것… 결백 주장 거짓으로 드러나
조국과 지지자들에게 미안함이나 부담감 느낄 필요 없어
정치적·심리적으로 조국 사태 악몽 떨치고 미래로 나아가야


검찰이 11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구속 기소했다. 공소장에 나오는 정 교수의 혐의는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기, 증거인멸교사 등 14개다. 검찰이 많은 인력을 동원해 두 달 넘게 탈탈 털어 나온 것이라고 해도 혐의 내용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와 진술이 공소장에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다. 재판을 통해 진실이 가려지겠지만, 개혁 태풍 앞에 놓인 검찰이 명운을 걸고 신중하게 범죄 혐의를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가 매머드 변호인단을 구성해 놓았는데, 만일 재판에서 무죄라도 나오면 검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는 검찰이 무리하게 혐의를 부풀리거나 짜맞추기 수사를 했을 가능성이 적다는 얘기다.

그동안 조 전 장관을 비호했던 여권 인사들이 많았다. 조 전 장관 딸이 받았다는 동양대 표창장 건 하나만 해도 위조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었다. 표창장이 정상 발급된 것처럼 말해 달라는 회유와 압력도 있었다. 동양대 PC 반출이 증거인멸 시도가 아니라 증거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는 궤변도 나왔다. 조 전 장관이 낙마하면 핵심 지지층이 이탈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레임덕이 올 것이란 여권 관계자들의 일사불란한 주장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조 전 장관 사퇴 후 오히려 중도층의 복귀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올랐다. 조국 사태를 통해 공정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힘이 센지를 목격했다. 현란한 정치공학적 계산과 진영 논리를 넘어서는 것을 봤다.

이런 가운데 관심이 가는 대목은 문 대통령이 검찰의 기소 내용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점이다. 조국 임명을 강행한 문 대통령의 잘못을 계속 따지자는 게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바로 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에게 속았을 가능성이다.

문 대통령도 법률가 출신인 만큼 검찰 수사 결과를 보고 감이 잡히는 게 있을 것이다. 검찰 기소 내용과 조 전 장관의 결백 주장 중 어느 것이 사실 관계에 부합할 지 판단이 설 것이다.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 임명을 강행하기 직전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구했다. 특히 청와대 참모를 통해 검찰이 수사 중인 혐의 내용을 보고받은 뒤 깊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내사 자료를 토대로 문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며 조 전 장관의 임명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는 일부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도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 내용을 보고 받은 뒤 조 전 장관 사퇴 쪽으로 기울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왜 임명 강행을 선택했을까. 여기에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임명 강행 건의 등이 영향을 미쳤고, 조 전 장관이 각종 의혹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며 읍소한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장관의 언변과 설득력은 탁월하다. 문 대통령은 2010년부터 인연을 맺어 온 조 전 장관에 대한 신뢰가 컸고 검찰 개혁 적임자로 여겼다. 조 전 장관에게는 팬덤도 많다.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를 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저서 ‘바보, 산을 옮기다’에는 노 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나온다. “장관들을 허망하게 낙마시켜서는 안 됩니다. 설사 나가게 되더라도 대통령이 지키려 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장관들이 대통령을 믿고 안정적으로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버티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 읍소하는 조 전 장관을 뿌리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교수가 조 전 장관을 떠밀어 읍소토록 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나 법무부 장관직에 대한 조 전 장관의 열망 또한 컸던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장관은 “저도 조만간 검찰 조사를 받을 것”이라며 “저의 모든 것이 의심받을 것이고, 제가 알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일로 인해 곤욕을 치를지도 모르겠다. 기소는 이미 예정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의 방어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갈라 놓을 정도로 논란이 컸던 조 전 장관 가족의 공정성 문제만큼은 정 교수에 대한 검찰 기소를 통해 시시비비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문 대통령이 조국 사태 악몽에서 완전히 빠져 나올 때가 됐다. 사퇴가 정치적 매듭이었다면 검찰 기소를 계기로 심리적으로도 결별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조국 사태로 인해 국정 운영 과정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벌써 임기 반환점을 돌아 후반기를 맞았다. 조 전 장관에게 계속 미안해할 여유가 없다. 아직도 조국 수호와 정 교수 석방을 외치는 지지자들에게 부담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논설위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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