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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손병호] 美 사령관까지 언론플레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비용 문제를 넘어 동맹의 ‘갑을’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보다 5배나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미치광이 전략’으로 동맹에 펀치를 날린 데 이어 정치적 발언을 금기시하는 군 장성들까지 나서서 연일 한국을 때리고 있다. 특히 미군 장성들이 내뱉는 말이 정치인 뺨치는 계산된 발언이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지난 11일 일본행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보통의 미국인들은 한국과 일본이 매우 부유한 나라인데 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병력 철수를 제안한 첫 대통령이 아니지 않냐”고 역사 강의를 하기도 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그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방위비 분담금은 결국 한국 경제, 한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 아니냐. 한국이 더 내야 한다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밀리의 유례 드문 기내 간담회와 마찬가지로 에이브럼스의 기자회견도 예고없이 자청해 마련됐다. 현역 군인 신분임을 감안, 둘 다 ‘남들이 그렇게 말하더라’는 식으로 우회 압박한 것도 닮은꼴이다.

요즘 미 국무부 당국자들의 물밑 언론플레이도 치밀하다. 지난주 방한한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제임스 드하트 방위비분담금 협상 수석대표는 공개일정 말고도, 각각 별도로 한국 기자들을 불러 ‘오프(비보도)’를 전제로 비공개 간담회를 잇따라 열었다. 분담금 반발 여론을 마사지하기 위한 자리였다.

미국의 파상공세에 맞서 정부가 겨우 여당 입을 빌려 몇 마디 하고 있지만, 귀에 쏙 들어오는 미국 측 발언과 비교하면 하나 마나 한 얘기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2일 당 회의에서 “미국의 무리한 분담금 증액 요구에 우려를 표한다. 자국 이익만 따져 동맹에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한·미동맹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여당 원내 스피커의 말이었지만 “미국의 방위비 요구는 갑질 중 상갑질”이라는 정의당 김종대 의원 발언과 비교하면 더더욱 맹탕처럼 들렸다.

미국의 돌변한 태도에 우리 정부가 꽤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분담금으로 50억 달러를 꺼냈을 때인 지난 8월만 해도 정부 최고위급 인사는 ‘50억 달러는 그냥 하는 말이다. 미국 파트너들도 50억 달러 발언에 대해 도리어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쪽도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 미 당국자들은 “50억 달러를 다 받겠다는 건 아니다”면서도 하나같이 그에 준하는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은 ‘협상의 기술’일 수 있지만, 물가인상률 정도의 인상을 언급해온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지만, 선거를 앞둔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만약 국민감정을 넘어서는 분담금이 정해지면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심판받을 게 뻔하다. 강경화 외교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총선 차출설이 있지만, 분담금 협상이 잘돼야 선거판에 얼굴을 내밀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여당 핵심 지도부는 내년 초 남북 및 북·미 관련 정세가 잘 안 풀려 자칫 선거가 ‘외교안보 총선’으로 치러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가뜩이나 그런 상황에서, 예전에는 당국 간 조용히 진행되던 분담금 협상이 올해는 국민 전체가 관심을 쏟는 핫이슈가 된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게다가 승패가 확연히 드러나는 ‘숫자’ 게임이어서 더욱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분담금 문제는 정부나 여당만 애태울 것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국익이 달린 문제다. 정부가 노련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여야는 물론, 언론도 협상단에 힘을 보태야 한다. 미국이 일사불란하게 팀플레이를 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자중지란을 보여선 안 될 것이다.

손병호 정치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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