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월 7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찬송 :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95장(통 8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야고보서 1:11


말씀 : ‘부(富)’가 기독교와 모순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가 우리에게 커다란 함정이 될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를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란 물질만의 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 건강, 능력 등의 소유가 풍부하다는 것이 신앙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방해되는 것은 그 풍부한 소유를 잘못 사용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부’를 의지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두 주인(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눅 16:13)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부’를 의지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한 사람들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도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약 1: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복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다’(시 11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에 따른 부유함은 방해물이 아니라 상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잠 14:24). 부유하면서 지혜로운 사람은 더욱 돋보이는 것입니다. 부함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하지 않고 주어집니다. ‘부’라는 것을 전적으로 악하게 생각해서도 안 되고 유일한 선(善)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부한 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중심이 되기 쉽습니다. 부한 자의 물질적 풍요함이 오히려 그들에겐 시련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은 야고보 사도를 통하여 ‘부’의 한계에 대해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11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적 풍요는 확고한 것이 아니며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기후 현상을 가지고 이 점을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들에 피는 풀과 꽃은 비가 온 뒤 잠깐은 화려해 보입니다. 그러나 다시 태양이 내리쬐고 사막의 열풍이 불면 금방 시들어 말라 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부’는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허탕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부유한 교인들은 ‘부’가 곧 안정을 보장한다는 그릇된 확신 때문에 영적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부자의 재산이란 가난한 자의 궁핍과 똑같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없어질 부유함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을 갈급하게 찾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 우리의 소망이 되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 환경에 이끌리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승민 목사(부천 원미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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