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청사초롱] 나의 버킷리스트



“해 넘긴 달력을 떼자 파스 붙인 흔적 같다./ 네모반듯하니, 방금 대패질한/ 송판 냄새처럼 깨끗하다./ 새까만 날짜들이 딱정벌레처럼 번진 것인지/ 사방 벽이 거짓말같이 더럽다./ 그러니 아쉽다. 하루가, 한 주일이, 한 달이/ 헐어놓기만 하면 금세/ 쌀 떨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갔다./ 공백만 뚜렷하다./ 이 하얗게 바닥난 데가 결국,/ 무슨 문이거나 뚜껑일까./ 여길 열고 나가? 쾅, 닫고 드러눕는 거?/ 올해도 역시 한국투자증권,/ 새 달력을 걸어 쓰윽 덮어버리는 것이다.”(문인수, 시 ‘공백이 뚜렷하다’ 전문)

새해는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우리는 해마다 맞는 해에 대해 과도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새해라고 해서 시간이 새롭게 태어나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섣달그믐날과 새해 첫날 간 다른 층위의 시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매해 첫날에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순환반복의 지리멸렬한 일상에 대한 환멸, 그런 일상으로부터의 탈주 욕망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까?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 내가 새로워져서 인사를 하면/ 이웃도 새로워진 얼굴을 하고/ 새로운 내가 되어 거리를 가면/ 거리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구상, 시 ‘새해’ 부분) 그렇다. 시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시간을 맞는 내가 달라질 뿐이다. 새해 새날을 살기 위해 우리는 새롭게 태어날 필요가 있다. 나는 올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새삼스럽게 새로운 생활의 습관을 가지려 한다. 습관은 운명을 만든다.

본래 소리가 없는 물이 흐를 때 소리를 내는 것은 울퉁불퉁한 바닥을 만난 탓이니 나를 다녀가는 물 같은 이들이 소리를 내지 않도록 새로이 마음의 바닥을 고르게 하자는 것과, 고통이 축복이고 무통이 죽음이라는 역설을 생활로 깨치는 것과, 누군가 나를 울지 않도록 하는 일과, 모든 이로부터 상찬 받으려 하지 않는 것과,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그늘처럼 죽어야 태어나는 부활의 나날을 사는 것과, 가던 길 문득 멈춰 고요와 적막이 우거진 우리들 미래의 거처인 허공을 응시하는 것과, 길가 쭈그려 앉아 돌 틈에 핀 괭이눈, 애기똥풀에게 눈을 맞추는 것 등등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한다.

일 년처럼 크고 질긴 음식이 있을까? 365일 동안 매순간 쉬지 않고 맛보고 뜯고 씹어 삼켜야 하는 음식. 일 년이라는 음식을 혼신을 다해 먹고 나면 또 한 해라는 시간의 음식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된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이 음식(시간)을 누구는 맛있게 먹고 누구는 허겁지겁 먹고 또 누구는 마지못해 먹으리라. 매해 첫날에 들여놓은 시간의 가마니에는 365개 낱낱의 시간의 낱알이 들어있다. 우리는 오랜 관성으로 묵은 시간의 가마니를 탁탁 털어 개어 놓고, 들여놓은 시간의 새 가마니를 헐어 자동화된 의식으로 한 톨(하루), 두 톨(이틀) 낱알들을 꺼내 먹다가 부지불식간 연말이 다가와 가마니가 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다 신께서 하사하신 적량의 가마니들을 시나브로 다 털어먹고 나면 어느 날 문득 시간의 궤도를 벗어난 자가 되리라.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요새 들어 자꾸만 줄어들고 작아지고 새는 것들에 더 자주 눈이 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이리라.

새해라 해서 특별히 소회가 다를 리 있겠는가? 관념의 유희일 뿐이다. 다만 목표 달성의 등정(登頂)이 아니라 오르는 과정을 중시하는 등로(登路)의 삶을 살아가리라. 결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보하거나 현재를 죽이는 삶을 살지 않으리. 오직 현재에 만족하고 현재에 충실한, 현재라는 종교의 실신한 신자가 되어 살리라, 다짐해 본다. 하루하루의 현재가 결국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니 현재를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으랴.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운 것을 생각하라.”(김종길, 시 ‘설날 아침에’ 부분)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