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이제 조국을 놓아주자”고 말했다. 갈등을 끝내자는 대통령의 간곡한 당부였다. 그런데 조국이 끝나지 않는다.
4개월 전인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은 조국을 놓아줄 기회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태국·미얀마·라오스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주말 당정청 고위 인사 4명을 청와대로 불렀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막 끝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 문제를 최종 결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이낙연 총리, 노영민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는 ‘선임명 후수습’을 건의했다. 조국 후보자를 장관에 임명해 검찰 개혁을 추진하자는 의견이었다. 민주당 의원들과 핵심 지지층의 의견을 종합한 결론이었다. 이낙연 총리는 임명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조국 후보자와 관련된 의혹들이 계속 커질 경우 정권에 부담이 된다는 우려에서였다. 참석자들 사이에 논쟁도 조금 있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조국을 놓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9월 9일 여당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국 후보자를 임명했다.
조국에 대한 애정이나 미안함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검찰 개혁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 조국 지명을 철회하면 문 대통령의 숙원인 검찰 개혁은 무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읍참마속이 아니라 울면서 조국을 임명하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조국은 검찰 개혁의 상징이었다.
여권은 조국을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아닌 무분별한 검찰 수사의 ‘희생자’로 만들었다. 조국을 지키려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검찰 개혁을 위한 동력이 커졌다.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진행됐던 ‘검찰 개혁 촛불문화제’는 그 상징이었다. 여권은 검찰을 ‘개혁의 적’으로 규정했고,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검사장급 인사를 밀어붙였다. 현재까지 여권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노무현정부가 실패했던 공수처법 통과에 성공했고,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도 처리했다. 말뿐인 개혁이 아닌 제도화된 개혁을 이뤄냈다는 호평도 나왔다. 이제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문 대통령과 여권의 ‘조국=검찰 개혁’이라는 ‘닥공’(닥치고 공격) 전략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논리가 많이 꼬였고 무리수를 남발했다. 조국 딸의 입시 과정이 비판받자 대입제도를 바꿨다. 정시 확대 문제는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난제였다. 하지만 조국 딸 문제가 불거지자 갑자기 정시 확대 방안이 발표됐다. “조국 딸 때문에 대입까지 바꾸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의 조국 일가 수사는 과한 측면이 있었고, 피의자 인권은 보호돼야 한다. 다만 ‘왜 하필 조국 일가부터인가’라는 질문이 나오면, 답변이 궁색하다. 법무부는 국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피의자 검찰 소환을 비공개하도록 했다. 언론이 일반 국민의 검찰 소환을 취재할 이유가 없다. 비공개 조치의 혜택은 정치인, 재벌 등 특권층만 본다. 첫 번째 수혜자는 조국 일가였다. 새롭게 임명된 검찰 간부들이 조국 전 장관과 여권 인사들 기소를 막기 위해 움직이는 정황들도 보도되고 있다. 조국과 관련된 인사들이 여전히 요직에 등용되고 조국을 비판하는 모든 세력은 적폐가 되고 있다.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랬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신발을 고쳐 신고 갓을 고쳐 쓴다.
지금 조국을 놓아주지 않는 것은 국민이 아니다. 조국 때문에 친구들과, 가족들과 말다툼하는 것도 지쳤다는 사람이 많다. 여권은 조국에게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고, 지금도 그렇다. 국민이 보기에 정권은 아직도 조국을 놓지 못했다. 조국을 놓을 수 없는 말 못할 속사정이 없다면, 인제 그만 조국을 놓아줄 때다. 조국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남도영 디지털뉴스센터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