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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현대공예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핀란드 디자인 10,000년’ 전이 열렸다. 기존의 전시가 대부분 전시품 위주였던 것에 비교해 해석을 앞에 두는 독특한 구성방식으로 화제가 되었다. 나 역시 꽤나 인상 깊게 보았는데, 전시와 별도로 목수인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전시장 한편에 붙어 있는 해설 문구였다. “장인정신은 오늘날 과학과 기술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장인의 손에 익은 ‘어떻게 할지를’ 아는 능력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 문구는 공예 관련인들의 SNS에 포스팅되기도 했고, 공예가들 사이의 대화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나는 장인에 관한 이 정의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변화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 정의라고 판단한다.

장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how to’로 규정하는 것은 장인/공예라는 특수한 문화에 동시대적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정의는 공예의 정체성을 ‘손기술’에서 찾는 재래적 맥락에 기인한 것인데, 기능적 측면에서 장인/공예인의 역할은 산업혁명 이후 단계적으로 축소되며 사라졌다.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역사에서 사라진 것들은 대부분 시간의 변화 속에서 그 필요성을 상실한 것들이다. 한 문명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추적하고 확립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것들을 복원하는 것은 박물관적인 의미는 가지겠지만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글렌 애덤스는 공예를 18세기에 탄생한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나 역시 애덤스와 조금 다른 의미에서 공예를 1960년대에 발명된 새로운 문화로 인식하고 있다. 현대의 학자와 작가들이 발명하고 지금 이 시대에 유의미한 역할을 제공할 수 있는 공예는 ‘어떻게 how to’의 범주에 갇힌 공예가 아니다. 현대의 공예는 ‘어떻게’를 넘어 ‘무엇을 what to do’를 포괄해야 한다.

나는 한국 현대공예의 지지부진한 상황은 공예를 여전히 ‘어떻게’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무엇을’은 디렉터나 디자이너 등이 담당하고, ‘어떻게’는 장인이 수행하는 분업화가 지금 한국공예의 주된 방향이다.

‘무엇을’을 당시 신종 직업이었던 디자이너에게 전담시키고, 제작과정은 기계, 자동화 시스템으로 분화시키며 공예의 소멸을 가져온 산업혁명의 방식이 다시 공예에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산업혁명의 방식이 물건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시작되었다면 현재의 공예 분업은 소위 ‘명품시장’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정도이다. ‘무엇을’과 ‘어떻게’를 분업화시키고 있는 한국의 현대공예가 생산한 결과물에 결국 예술이나 상품의 변주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과거와 달리 높은 교육수준을 가지고 있는 공예가들이 이 분업화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늘 의아하다.

디렉터나 디자이너라는 직종은 이미 스스로의 영역을 확립하고 있다. 공예가 예술이나 디자인의 종속 장르가 아닌 독립된 장르의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디렉터/디자이너와는 다른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다행히 공예/장인은 ‘제작기술 how to’라는 쉽게 획득할 수 없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를 바탕으로 ‘무엇을’이라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다면 공예/장인은 독자적인 가치를 가질 수 없다. 영미의 사회학자들이 주장하듯 이 시대가 가진 다양한 문제들에 유용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공예’라는 근대의 발명품이 다른 분야의 부품 정도로 가치절하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유익한 결과가 아니다.

나는 ‘어떻게 how to’의 가치만을 가진 사람을 장인이라고 명명하지 않는다. 기능의 정점에 서 있는 그를 나는 ‘달인’이라고 부른다. 인기 TV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서 병만 족장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지만, 거친 정글에서 ‘왜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달인’이라는 병만 족장의 별명은 몹시 자연스럽다.

“장인, ‘무엇을’과 ‘어떻게’를 통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장인의 정의다. 이 정의가 장인의 정체성으로 광범위하게 인식될 때 공예는 사회에 유의미한 동시대적 가치를 구현하며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윤관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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