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안정의 관건인 북핵 문제가 답보 상태인 가운데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등 최전선에서의 우발적 군사충돌을 방지하자는 한반도 평화안정 구축 시도에 따라 지난 2년간 평화의 기운이 감돌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상과 현실은 다르다. 분명한 현실 인식과 점검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를 직시해 적절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과 남북 소통의 실종으로 안보 불확실성이 다시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국과 관계 복원에 성공했고 러시아까지 끌어들여 북·중·러 전략 협력구도도 재구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찾아야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적이고 치명적인 군사적 억지력 확보가 될 것이다. 특히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해군력 증강, 미국의 대중국 억지의 최전선 역할을 하는 서해 지역의 해양안보확보는 핵심 사안이다. 기존 한국의 해양안보는 서해의 국지적 도발을 억제하면서 유사시 미국의 7함대가 개입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고 미국이 우리 안보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희망사항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은 세계 최강국 도약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 달성을 위해 강군의 꿈(强軍夢)을 현실화하고 있다. 일찍이 1982년 덩샤오핑(鄧小平)은 류화칭(劉華淸) 해군 제독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등용해 원양작전 능력을 갖춘 해군력 구축에 시동을 걸었다. 2004년 중국 국방백서는 ‘제해권(Command of the Sea)’을 포함시켰고, 2006년에는 ‘대양해군 건설’을 선언했다. 시진핑 체제는 ‘해양강국 건설’을 공식화하고 모든 국가전략을 ‘해양’과 연계시킨다. 중국군의 전략이 ‘해양전략사상’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5년까지 총 6척의 항공모함전단 구축을 공식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듯 중국의 해군력이 서해에 직접 투사될 날이 목전인데도 중국의 해군력 증강을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만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점검해봐야 한다. 안보에 육·해·공이 따로 있을 수 없지만 21세기의 해상군사력은 개념이 다르다. 영유권 다툼 같은 갈등 분쟁요인 해결 이외에도 해상교통로 보호나 해적 등 국제테러의 공동대응, 해상조난 협조 등 국제협력체계의 규범이나 원칙 수립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완성단계로 알려지고 있고, 일본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도 강력한 해양 국가에 방점이 있다. 사실상의 항모 보유를 통해 해상전력을 확대하려는 노력도 이의 일환이다.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어서 ‘강한 러시아 부활’에 해양강국 건설을 핵심으로 꼽는다. 이러한 추세는 해상 군사력의 증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의 안보 우려를 증폭시키는 대목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해군력을 ‘개방·통상국가의 국력’으로 규정해 2045년 강한 해군력을 기반으로 한 해양강국 완성을 선언했다. 구호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적어도 한반도 인근 해역에 대한 주변국의 위협을 거부하고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해상군사역량 구비가 최우선이다. 현상 속에 숨은 현실을 직시하면서 분명한 억지력 확보가 외교적 공간도 확대하는 첩경임을 명심하자.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