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날이었다. 미국 문화의 심장에서 또렷한 한국어가 들렸고, 한국 주인공들은 무대를 장악했다. 객석에 앉은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은 더 말하라며 “업 업 업”을 외쳤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은 품격 자체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0일(현지시간) ‘2020 오스카의 최고, 최악의 순간’이란 기사에서 봉 감독을 ‘가장 마음 따뜻한 승자’(The Most Heartwarming Winner)로 칭하면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향한 존경의 표현을 높이 샀다.
한국 영화 101년, 미국 아카데미 92년 역사를 새로 쓴 봉 감독의 기생충 수상 소식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으로 우울하던 전 국민을 ‘업’ 시켰다. 마음 같아선 태극기라도 흔들고 싶었지만, 현실은 마스크를 쓴 채, TV 화면을 응시하면서, 그리고 스마트폰 알림 뉴스로 만족해야 했다. 오스카상 수상도 초현실적이었지만 수상식을 지켜보는 우리네 상황도 비현실적이었다.
비현실의 연속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이른바 ‘문화강국론’이다. 오늘 다시 읽어봤다. 나의 소원은 ‘백범일지’의 부록으로 실려 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 원한다.”(백범일지, 431쪽, 돌베개)
영화 기생충 내용을 모두가 좋다고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의 것을 모방하지 않은 한국적 영화로, 할리우드라는 세계 문화의 정점에서 그 모범이 된 것은 확실하다. 또 기생충 수상으로 우리 자신이 행복해지고, 전 세계가 기뻐한 것도 분명하다.
‘나의 소원’은 백범이 1947년 쓴 글이니 벌써 73년이 흘렀다. 우리가 모두 체감하는 것처럼 문화의 높은 힘은 한류를 통해 진작부터 실현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K드라마 중심의 한류 1.0, K팝의 한류 2.0, 방송 음악 공연 생활이 결합한 K컬처의 한류 3.0, 그리고 기생충으로 대표되는 K무비의 한류 4.0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문화를 통해 세계에 평화가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근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 다녀왔다. 한류는 아프리카에도 불고 있었다. 현지 한인들에 따르면 전에는 중국인이 공사한 도로에 일본 차만 다녔는데 지금은 한국 자동차가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삼성과 LG 제품은 어디든 보였다. 기독교 한류도 들썩였다.
지난 5일 가나교회 목회자 2000여명이 모였는데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번영신학이 활개 치고 신학이 약한 현지 교회 현실에 제자훈련이 대안이라 했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워 그리스도의 제자로 길러내자는 몸부림이었다. 국제적 차원의 제자훈련 세미나는 그동안 브라질 중국 대만 에티오피아에서 진행돼 자체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신앙 한류는 제자훈련만이 아니다. 통성기도 새벽기도 성경공부 4차원영성 등 고유한 한국교회 ‘영적 한류’가 세계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영적 한류가 영원한 행복을 선사했으면 좋겠다. 단, 조건이 있다. 백범의 말이다.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이 태탕하여야 한다.”
신상목 종교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