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은 결혼생활에 독일까? 많은 사람들이 가능하면 부부싸움을 피하며 (겉으로만이라도)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부부싸움을 안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30년 이상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어찌 갈등이 없겠는가. 부부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결혼생활의 일부이고 현실이다. 부부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결혼 전의 약속은 우리들의 아름다운 희망일 뿐이다.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부부가 있다면 그들이 성인군자일 확률보다는 한쪽이 참고 있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물 아래 백조의 쉼 없는 발놀림처럼 평화롭게 보이는 결혼생활은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을 담보로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나쁜 것도 아니고 두려워 할 대상도 아니다. 피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순간적으로는 위기를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부부싸움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부싸움을 ‘어떻게’ 하는가이다.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를 가르는 중요한 단서는 부부싸움의 방식에 있다. 3가지 측면에서 싸움의 방식이 구분된다. 첫째는 부부싸움을 시작할 때 사용하는 언어로, 비판이냐 비난이냐로 나눌수 있다. 비판은 구체적인 상황을 기초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고(“이것 왜 이렇게 했어? 하지 말라고 했잖아?”) 비난은 상대방의 인격 자체를 공격하고 무시하는 것이다(“당신이란 인간이 그렇지 뭐!”).
두 번째 측면은 싸움을 대하는 태도로, 제기된 문제를 적극적으로 타결할 수도 있고 수동적으로 방어(“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냐?” “너는 어떤데?”) 혹은 회피(무시, 대꾸 안 함)할 수도 있다. 세 번째 측면은 부부 중 누가 주로 싸움을 시작하고 누가 방어를 하느냐에 관한 것으로, 아내가 심리적 파워를 가졌을 수도 있고 남편이 심리적 파워를 가졌을 수도 있다. 그럼 불행한 부부들은 싸움할 때 어떤 방식을 취할까?
크리스토퍼 히비 심리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불행한 부부들은 주로 아내가 남편에게 (짜증을 동반한) 불만과 비난을 쏟아내며 싸움을 시작하고 남편은 그 싸움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회피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한다. ‘사소한 일에 아내가 불평과 비난을 쏟아내지 않았다면 그런 것들을 무시하거나 회피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남편은 아내의 잔소리를 타박한다.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은 남자는 ‘내가 원래 그런 인간이라고? 나 원래 그런 인간이야! 몰랐어? 그놈의 잔소리 진절머리 난다!’라고 중얼거리며 더욱더 방어적으로 싸움을 회피한다.
한편 아내는 ‘한번이라도 잘못된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았다면 어느 누가 매일 힘들게 애들 다루듯이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겠냐!’며 남편의 진정성 없는 태도를 타박한다. ‘누가 남자는 평생 철이 들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놈의 무시와 회피에 이제 정말 넌덜머리가 난다!’라고 중얼거리며 더욱더 잔소리에 박차를 더한다. 닭이 먼저일까, 아니면 달걀이 먼저일까? 중요한 것은 이 싸움의 패턴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들의 전형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라는 것이다. 아내의 비난은 남편의 회피와 무시를 불러오고 그 회피와 무시는 또다시 더 강한 아내의 비난을 불러온다. 한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늪과 같다. 부부싸움을 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부싸움을 잘하는 것이다. 누가 이 늪과 같은 지옥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참음과 인내로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것(말을 안 하는 것)은 능력도 자랑도 아니다. 상대방이 듣게 불만을 말하는 것과 상대방의 불만을 듣는 것이 진짜 능력이다.
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