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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코로나19 대하는 세계



코로나19의 기세가 무섭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닌 국제 의제가 되면서 몇 가지 함의를 주고 있다. 우선 강대국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놓인 국제기구의 무력함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중국이 당선시켰다. 2017년 중국은 자국 외교관을 동원해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중국의 아프리카 거점국인 에티오피아 출신의 거브러여수스 선거운동을 했다. 그는 공산주의 계열의 ‘티그레이 인민해방전선’ 출신이기도 하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면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 대해 부정적 정책을 취하는 틈을 파고들었다. 미국은 유네스코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탈퇴하고 전체의 22%를 제공하던 유엔 예산도 6억4000만 달러 삭감했다. 반면 중국은 거브러여수스 당선을 위해 약 10조원을 WHO에 기부하겠다고 공약했다. 유엔 기구는 회원국의 분담금과 기부금으로 운영되므로 WHO는 사실상 중국에 의존하게 됐다.

그 결과 거브러여수스의 WHO는 지나치게 중국 편을 들어 코로나19 초기 대처에 실패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바이러스가 이미 타국으로 확산한 지난달 22일 거브러여수스는 “중국 내에선 비상사태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아니다”고 평가했다. WHO의 권한인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도 지난달 30일에야 선포해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전문가 대부분이 주장하는 ‘교역과 이동 제한의 필요성’을 권고하지 않았다. 이달 4일 거브러여수스는 “22개국이 중국을 상대로 각종 제한 조처를 내렸다. 하루빨리 제한을 풀어 달라”면서 중국을 대변했다. 국제기구는 개별 국가의 주권을 제한해서라도 인류의 공공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러나 이번 사례처럼 특정국의 이해를 우선한다면 국제 협력은 어려워지고 개별 국가는 각자도생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기존 보편적 규범을 무시한 중국식 국가 주도 방식으로 국제기구의 규칙을 정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코로나19로 더욱 증폭되는 양상도 보인다. 최강대국들이 전염병을 막기 위해 협력하기는커녕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면서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속내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의 지난달 31일 인터뷰를 통해 드러났다. 로스 장관은 중국의 전염병 만연으로 미국의 일자리가 늘어날 기회가 생겼고, 이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 미국에 “좋은 소식”이라고 언급했다. 스티븐 므느신 재무장관도 이달 6일 “중국이 무역 합의를 통해 다짐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중국의 어려움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올해 계획된 중국의 4조3508억원 상당의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압박했다.

이런 미국의 공세에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일부 국가들의 과잉 대응으로 불필요한 공포를 불러왔다”고 미국을 비난하면서 맞섰다.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는 미국 방송에 출연해 톰 코튼 상원의원이 제기한 코로나19의 생화학무기 연구 연관성에 대해 ‘미친 소리’라며 감정적 반응을 보였다. 나아가 중국은 미국 정치학자가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중국은 아시아의 진짜 병자’라는 칼럼을 문제삼아 미국 기자를 추방했다. 패권 경쟁을 완화하려면 경제·군사 등 타협이 어려운 의제에서 벗어나 비교적 이해 공유가 수월한 보건·환경 분야에서 협력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국제정치 이론이 부정되고 있다. 세계는 코로나19를 인류 공동체의 생존 문제로 보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공동 대처를 위한 협력 기제는 무기력하고 강대국은 서로의 감정싸움에 바쁘다. 암울하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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