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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구름빵’ 부가가치 4400억?



안재선 작가의 그림책 ‘삼거리 양복점’(웅진주니어)은 올해 3월 30일부터 열리는 2020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의 라가치상 오페라 프리마(신인상) 부문 ‘스페셜 멘션’을 수상한다. 라가치상은 1966년 시작돼 전 세계에서 한 해 동안 출간된 최고의 아동 도서에 수여되는 ‘아동서의 노벨상’으로 평가받는 권위 있는 상이다. 라가치상 심사위원회는 ‘삼거리 양복점’이 “아이들에게 친근한 강아지 캐릭터가 100년 동안 운영한 작은 양복점을 통해 붐비는 도시와 사람들, 옷 만드는 도구와 절차를 갈색과 회색으로 절묘하게 묘사했다”고 평했다.

한국은 2004년에 ‘지하철은 달려온다’(신동준 글·그림, 초방책방)와 ‘팥죽 할멈과 호랑이’(조호상 글·윤미숙 그림, 웅진주니어)가 이 상을 최초로 수상한 이래 거의 해마다 상을 받는 단골 수상국가가 됐다.

안 작가는 그림책 워크숍을 진행하는 ‘그림책향’에서 함께 공부한 작가다. 2015년의 ‘담’(지경애), 2018년의 ‘너는 누굴까?’(안효림)와 ‘나무, 춤춘다’(배유정), 2019년의 ‘그림자 하나’(채승연) 등도 라가치상을 수상했는데 이 책들의 작가들도 그림책향 출신이다. 그림책향은 최근 3년 동안 매년 수상작을 배출했다. 볼로냐 도서전에서는 해마다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도 선정한다. 올해는 66개국 2574명이 출품했는데 24개국 76명이 선정됐다. 한국 작가는 15명이 선정됐는데 그중 그림책향 출신이 6명이다. 가히 그림책향은 신인 작가를 세계적인 작가로 키우는 산실이 되고 있다.

그림책향의 운영자는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 사진 작업에 참여한 김향수씨다. 다른 부서 근무자였던 그는 퇴근 후에 일해야 했기에 4개월여 가까이 밤에만 사진을 찍어야 했다. 처음에 ‘구름빵’의 판권과 표지에는 ‘김향수 빛그림’이라 적혀 있었는데 백 작가가 저작권 소송을 걸어와 재판에서 이기면서 김향수라는 이름은 지워졌다. ‘구름빵’은 “40만권 넘게 팔리고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는 등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4400억원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작품”으로 원소스 멀티 유스에 성공했지만 신인이었던 백 작가가 고작 얻은 이익은 1850만원에 불과한 대표적인 불공정 저작권 계약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부가가치 4400억원은 와전된 것이었다. 문화융성을 위한 한 회의에 참석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2013년) 불법 복제시장 규모가 4400억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래서야 창작자들이 힘을 내기 어렵다. 관련 부처들은 불법 시장을 상시 모니터링하면서 저작권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한 다음 ‘구름빵’ 사례를 들었고, 이를 일부 언론이 잘못 인용하면서 엉뚱하게도 ‘구름빵’의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뻥튀기되는 결과를 낳았다.

백 작가는 이 시대 최고의 그림책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장수탕 선녀님’이나 ‘알사탕’ 등 그의 그림책이 출간될 때마다 어김없이 올해의 책으로 언급된다. 출판사와 작가는 아직도 소송 중인데 2심까지는 법원이 출판사의 편을 들어줬다. 만약에 그림책의 아이디어가 많은 백 작가와 실력이 있는 출판기획자가 힘을 합해 크로스(트랜스)미디어 전략을 확실하게 수행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세계 출판계는 종이책 매출의 감소를 캐릭터에 바탕을 둔 굿즈 및 저작권 판매 등 지식재산권(IP) 비즈니스로 극복해내고 있다. 그래서 ‘구름빵’의 사례가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향후에는 작가와 출판사가 저작권부터 확실하게 정리한 후 총력을 기울여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BTS 방시혁 대표처럼 실력 있는 기획자 김향수 대표도 존중받아야만 마땅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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