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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마스크 대란 속 정부 민낯



9일 오전 9시20분 회사 지하 약국에 갔다. 출생연도 덕에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 구매하게 됐지만 이미 줄은 30m가량 이어졌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투덜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기자는 44번으로 불렸다. 약사는 마스크 내주랴, 고객 주민등록번호 컴퓨터에 입력하랴 눈코 뜰 새 없었다. 오전 10시쯤 겨우 마스크 2장을 샀다.

득템했다고 기뻐해야 하나. 마스크 대란에서 보여준 청와대와 경제 당국의 실기·말 바꾸기·오락가락 행보를 보면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생각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1월 20일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뒤 마스크 수요가 늘고 가격이 치솟았지만 정부 움직임은 굼떴다. 마스크 비축을 서둘러야 할 때 되레 1월 마스크 등의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9배가량 많았다(한국무역협회 통계). 마스크 대란이 본격화한 2월에도 매번 타이밍을 놓쳤다. ‘마스크 매점매석 금지’(2월 5일)를 시작으로 한 달여 새 나온 마스크 대책만 5차례. 수출을 걸어 잠그기로 한 게 지난 5일이었다. 첫 확진자 발생 사흘 만인 1월 24일 마스크 수출을 전면 금지한 대만에 비하면 게걸음 수준이었다.

정부의 잇따른 식언은 여론에 불을 질렀다. 지난달 26일 기획재정부는 “27일 오후부터 마스크를 구입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스크 공급물량은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거들었다. 이튿날 시민들은 새벽부터 나섰지만 허탕을 쳤다. 그제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물량을 구축하는데 하루 이틀 더 소요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감염병 경보를 ‘심각’으로 올리며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을 신신당부하던 정부는 마스크가 부족해지자 슬그머니 “건강하면 안 써도 된다”고 말을 바꿨다. 자녀를 위한 마스크 대리구매 불가 방침은 하루도 안 돼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다. 우왕좌왕 행보가 흡사 ‘봉숭아학당’을 연상케 한다.

과거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것은 경제 컨트롤타워의 기민하고 신속한 대응과 결단 덕분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부실금융기관의 빠른 퇴출, 금융위기 때 나온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그랬다. 마스크 수급 문제를 이들 위기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에 대한 분석, 업계 현황 파악을 소홀히 하면서 적시 대응이 늦어졌고 민심의 동요는 앞선 경제위기 이상으로 커졌다. “천조각 하나 해결 못 할까”라는 오만함과 현장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결과였다.

현 정부 경제 실력은 코로나 사태 전에도 초라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에 그쳤고 1인당 국민소득은 4년 만에 하락했다. 소득주도 성장을 외쳤건만 성장과 소득 모두 후진했다. 정부는 일각의 거시경제 성적 비판에 대외여건 혹은 가짜뉴스 탓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국민 일상인 사소한 마스크 문제에 허둥댔고 제대로 밑천을 드러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란 점을 간과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예고된 내수 위기도 헤쳐 나가야 한다. 경제위기 극복 과정을 봐온 국민은 현 경제팀의 능력을 지켜볼 것이다. 마스크 대란을 복기해야 한다. 정확한 실태 파악, 현장 중심의 대책 마련, 신속한 지원이 답이다. 빈사 상태의 기업을 살릴 규제 완화도 급선무다. 또다시 이념적 담론에만 치우치면 신뢰 회복은 물 건너간다.

17세기 스웨덴의 악셀 옥센셰르나 총리는 정부의 무지와 실정으로 민중이 피폐한 현실을 보며 아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아들아, 이 세상을 얼마나 하찮은 자들이 다스리는지 똑똑히 알아둬라.”(‘독선과 아집의 역사’) 이런 평을 들을지 말지는 당국 하기에 달렸다. 실수를 만회할 시간은 많지 않다.

고세욱 경제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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