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12일] 겸손한 비판의 칼



찬송 :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289장(통 20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7장 1~6절


말씀 :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좋은 능력입니다. 잘하는 것과 잘못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 참혹한 결과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능력을 악하게 사용한다면 그 역시도 매우 큰 문제일 것입니다.

1절과 2절을 보면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잘못된 것을 향해 비판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이나 제자들의 잘못을 꾸짖으시고 비판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의 비판은 그런 느낌의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비판한다는 말은 ‘꼬투리 잡는다’ 혹은 ‘정죄한다’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지적질’을 많이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손을 닦지 않았을 때도 욕을 먹었고, 예수님 역시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여지없이 종교지도자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꾸짖는 모습과 종교지도자들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말씀하시고 그의 온전한 회복을 늘 강조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랑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입지, 자신들의 율법적인 모습들을 과시하기 위한 비판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2절에서 경고합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비판을 받고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 받을 것이니라.”

자신의 지적질에 다른 사람이 그 잣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절대적인 착오입니다. 그런 모습을 예수님은 목공소의 상황에 비유하셨습니다. 3절을 보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하십니다.

티는 목공소에 날아다니는 먼지나 톱밥 가루를, 들보는 널빤지나 천장을 가로지른 큰 나무를 생각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의 회복도 바라지 않으면서 잘못마다 찾아내서 꼬투리 잡는 사람은 타인의 눈 속 작은 먼지는 찾아낼지언정 자신의 커다란 잘못은 성찰하지 못합니다.

풀 한 포기 날 자리 없이 삭막하게 남을 비판하는 사람의 영혼에는 ‘자신만이 옳다’는 자만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틀 안에 모든 것을 맞추려는 시도는 결국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식까지도 그렇게 비판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만심에 삼켜진 사람입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의 죄가 크다고 여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의 티도 빼낼 수 있습니다.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고 포용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 사랑으로 가득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너무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허물 많은지 보게 하시고, 우리를 품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도 타인을 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주영관 목사 (너머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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