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의 평해에 가면 해월헌(海月軒)이라는 유서 깊은 고택이 있다. 그 마을에 살던 황응청(黃應淸)이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있다가 탄핵을 받아 죄인의 신세로 귀양 온 이산해(李山海)에게 이런 말을 했다.
“무더운 여름날 좁은 방 안에 있더라도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땀이 나지 않고,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땅에 있더라도 목을 움츠리고 발을 싸매고 있으면 살이 트지 않는다오. 만약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달리며 굳이 바람 부는 정자와 따뜻한 방을 찾아 들어가려고 한다면, 시원한 정자나 따뜻한 방은 얻기도 쉽지 않거니와 내 몸이 먼저 병이 들 것이라오. 비유하자면 빗자루로 먼지를 쓰는 것과 같아 쓸면 쓸수록 먼지가 더욱 생기니, 차라리 쓸지 않아 먼지가 저절로 가라앉는 것이 낫다오. 또 비유하자면 우물 치는 것과 같아 휘저으면 물이 더욱 탁해지니, 차라리 휘젓지 않으면 물이 저절로 맑아진다오. 이는 모두 정(靜)의 힘으로 동(動)을 이기는 것이라오.”
이 말을 들은 이산해는 ‘동(動)’만 알고 ‘정(靜)’을 몰랐던 지난날의 삶을 반성했다. 정조(正祖) 때의 명신 채제공(蔡濟恭)은 정적의 공격을 받아 도성 안에서 살 수 없어 노량진에 조그만 집을 빌려 살면서 그 이름을 고요함으로 다스리는 집 정치와(靜治窩)라 했다. 한여름 열기가 좁은 집을 달구었지만 정치와에 사는 채제공은 더위를 느끼지 않았다. 그 방편은 ‘이정치열(以靜治熱)’, 고요함으로 열기를 다스리는 데 있었다.
이산해와 채제공은 부귀와 공명을 얻느라 뜨겁게 살았다. 우리도 그동안 너무 뜨겁게 살았던 것 같다. 최근 창궐하고 있는 바이러스도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뜨거운 욕망이 초래한 것일 수도 있겠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수가 많아지다 보니 이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들끓고 있다. 이에 간략함으로 번다함을 제어하고,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어한다는 뜻의 ‘간이제번 정이제동(簡以制煩 靜以制動)’ 여덟 글자를 생각해본다.
‘논어’에서 덕으로 정사를 베푼다는 ‘위정이덕(爲政以德)’이라는 구절에 대해,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풀이한 데서 이 말이 유래하니, 공자가 제시한 올바른 정치의 방도가 이것이라 하겠다. 여기에 “고요함으로 번다함을 통제하고 간략함으로 대중을 제어하면 일이 줄고 일이 줄면 백성이 편안해진다(靜以制煩 簡以御衆則事省 事省則民安)”라고 한 조선 후기의 문인 남공철(南公轍)의 말을 더하여,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좀 더 침착한 마음으로 좀 더 간략한 방법으로 번다한 사태에 대처할 때, 안정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차분해질 것이라는 말로 풀이하면 좋을 듯하다.
이와 함께 병에 대한 공포심으로 마음이 뜨거워진 사람들도 ‘정’으로 ‘동’을 제어하라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뜨거워진 마음은 조용함으로 다스려야 한다. 마음공부를 지상의 과제로 여겼던 주자(朱子)나 그를 배운 조선의 학자들은 심(心)이 화(火)에 속한다고 여겼다. 조선 중기의 문인 이수광(李睟光)은 불을 끄는 마음의 물이 고요함이라 했다. ‘정’으로 ‘동’을 제어하는 것은 물로 불을 제어하는 것과 같으니, 불이 멋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절로 고요해진다고 했다. 채제공이 이른 것처럼 고요함으로 뜨거움을 제어하고, 황응청이 이른 것처럼 먼지는 털수록 많이 일어나고 우물물은 휘저을수록 혼탁해지는 법, 이럴 때일수록 고요함을 중히 여겨야 하겠다.
19세기 말 이득로(李得魯)라는 사람이 태백산 자락에 은거하면서 집 이름을 고요한 움집 ‘정와(靜窩)’라 했다. “움직임이 없으면 일이 없고 일이 없으면 간소하고 간소하면 고요하다”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방에다 이런 이름을 붙이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 어떨까 싶다.
이종묵 (서울대 교수·국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