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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표정 비우게 하는 마스크



춘천에는 한국전쟁도 몰랐을 정도로 오지에 있는 문배마을이 있다. 지금은 구곡폭포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쉽게 드나들지만 당시에는 여의치 않았다. 그때를 회상하며 어떤 이는 지형 탓에 소식이 닿지 않아 전쟁도 몰랐으니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사정은 좀 다르다. 정보에 어두우면 불편함이나 부끄러움을 넘어 생명까지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보의 가치가 때론 돈보다 큰 사회다. 최근 그에 따른 격차가 주목받고 있다.

이른 아침에도 줄은 길었다. 사람 수를 세던 담당자는 다섯 사람 앞에서 끊어질 거라고 했다. 그래도 머뭇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혹시 누군가 자리를 뜰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결국 줄을 이탈한 사람은 없었다. 부랴부랴 다른 우체국이나 약국으로 달려갔지만 좋은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마스크 있냐는 간절한 물음과 같은 대답을 반복해야 하는 피로감이 종일 이어졌다.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마스크 5부제로 상황이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이 중 목소리에 좀 더 힘이 실리는 쪽이 있다.

바이러스 현황을 전달하는 자리에 유독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사였다. 수화는 손짓뿐만 아니라 입 모양과 표정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면서 입을 볼 수 없게 되자 장애인들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실시간으로 자막을 쓰는 방식도 있지만 여건상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바이러스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말로 빠르게 표현돼 퍼지지만 그 말이 수화가 되기까지의 시간은 더디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들은 생활이나 사회적 인식과 함께 정보에서도 소외받는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요즘처럼 정보가 나와 주위 사람들의 건강과 직결될 때는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수어통역사의 손짓이 간절하게 읽히는 이유다.

약국마다 마스크가 들어오는 시간이 달라 헛걸음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마스크가 남아 있는 약국을 빠르게 검색하고 공유하는 것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기댈 수 있는 건 텔레비전 뉴스나 이웃이 전하는 소식뿐이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지방에서 마스크가 구비된 약국과 들어오는 시간까진 세세히 알려주지 못하고 이웃에게도 정확한 이야기를 듣기 어려울 때가 잦다. 인터넷이나 홈쇼핑으로 구매하는 것도, 마스크를 사러 나서는 것도 어려운 형편에 놓인 이들이 주위에 수두룩하다.

고난에 빠졌을 때 우리는 내가 처한 어려움과 함께 유난히 더 취약한 계층과 모르고 지나쳤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된다. 평소라면 떠올려보지 않았을 장면일 때가 많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결할 방법, 마스크를 쓰고 상담할 수 없었던 콜센터 직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부모가 모두 감염됐을 때의 자녀 양육 문제, 정보의 빈부격차로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까지. 이것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이후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빠지면 진짜 문제로 남아 반복되기 쉽다.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는 순간 자칫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 보니 표정 짓는 일을 자주 잊곤 한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더 그렇다. 마스크는 얼굴만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표정과 감정까지 비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제고 마스크를 벗게 되면 한동안 무표정으로 지내다가 조금씩 굳어 있던 근육을 풀며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그때 우리가 이 상황에서 마주했던 문제는 사라지겠지만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바이러스에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스크를 쓰는 바람에 굳이 표정을 짓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감정과 시선까지 놓치진 않아야겠다.

전석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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