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도 제짝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도 어울리는 제짝이 있다는 뜻으로, 괴팍한 성격이나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그에 딱 맞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고 그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속담은 결혼이 늦어지거나 결혼하고 싶으나 짝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덕담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과연 각 사람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일까. 특별히, 예부터 전해오는 말처럼 (서로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인 사람을 만나면 서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성격이 불같이 급하고 강한 사람은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을 만나면 행복할까. 매사에 덜렁대고 대충 하는 사람은 꼼꼼하고 섬세한 사람을 만나면 행복할까. 항상 어질러 놓고 쓸모없는 잡동사니를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깔끔함과 정리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할까.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본인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이성을 보면 매력을 느낀다.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며, 소심한 사람은 대범하고 소신이 강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사람을 찾아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들의 이러한 희망은 현실에서 철저하게 배신당한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잘 살면 좋겠지만 정작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수많은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다름’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에서 다툼과 갈등의 씨앗이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결혼 생활에서 부부간의 성격적 다름은 각 배우자의 생존과 번영에 도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해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고, 행동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모두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 듣는 척을 할 뿐이지 사실 듣지도 않고 듣기도 싫어한다. 부부간의 성격적 다름은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동기를 저해하여 각 배우자로 하여금 본인이 살고 싶은 대로 못 살게 한다. 함께 사는 부부가 어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부부에게는 어느 것 하나도 녹록지 않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저축하자는 사람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현재의 삶을 누리며 살자는 사람, 몸이 아파도 집안 정리와 설거지는 다 해 놔야 편히 누울 수 있는 사람과 그냥 편하게 살면 되지 왜 그렇게 유난스럽냐며 도리어 핀잔을 주는 사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쏟아부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과 되도록이면 혼자 참고 속으로 삭이는 것이 편한 사람, 모든 일을 미리 꼼꼼히 준비하는 사람과 막판까지 미루다가 결국 대충 마무리하는 사람, 안 사면 안 샀지 하나를 사더라도 좋은 것을 사고 싶은 사람과 무조건 10원이라도 싼 것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
부부들은 서로의 다름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다름을 이해한다는 것은 멋진 말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어”라며 서로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이해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양보와 희생을 통한 행동 변화까지 요구되기 때문이다. (할 수도 없지만) 수많은 양보와 반복되는 희생은 생존과 번영 그리고 행복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다른 한쪽의 짚신보다는 나와 비슷한 다른 한쪽의 짚신이 신기 편하다.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