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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프리츠커상과 한국건축



올해의 프리츠커상은 아일랜드의 여성 듀오 건축가 이본 패럴과 셀리 맥나마라에게 돌아갔다. 지난 40여년간 일관되게 건축물이 지어질 장소, 기능뿐 아니라 그곳에 거주하고 사용할 사람들을 위해 노력한 점을 시상의 배경으로 꼽았다.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한두 개의 건축물보다는 오랜 기간을 통해 건축가의 창작 활동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하얏트재단에서 주는 상이다. 주최 측은 “건축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을 보여주어 사람들과 환경에 일관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한 건축가에게 수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발표는 몇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여성 건축가라는 사실은 그 구분조차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편견의 시선이어서 조심스럽지만 백인 남성이 대다수를 지배하는 건축계의 사정을 알고 보면 대단한 성취임은 분명하다. 아일랜드라는, 유럽의 주류에서는 조금 비켜난 나라 태생이라는 점도 일반적이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들의 작업이 화려한 공간이나 유행에 민감한 세련된 형태를 구사하기보다 기본에 충실한 건축 형식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본인들도 수상 소감에서 “영웅적 공간보다는 그 안에 살고, 느끼게 될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인정해준 점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밝혔다.

지역의 환경에 적합한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를 선정하는 것은 프리츠커상의 최근 경향이다. 재작년 수상자인 인도의 발크리슈나 도쉬는 8만명 이상의 저소득층을 효과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주거단지를 개발하는 등 인도의 국가적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였다는 점이 시상 이유였다. 그보다 두 해 전 수상자인 칠레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가난한 사람들, 재난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건축물을 효과적으로 설계했고 에너지 소비 절약과 공공 공간 확장에 이바지한 점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심사위원들은 “건축이 진정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슈퍼스타급 건축가를 시상하던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결이다.

수상자가 발표되는 3월마다 한국의 건축계는 자기반성과 손가락질이 난무한다. 40여명의 수상자 중 아직 한국인 건축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중의 압권은 차세대 프리츠커상 프로젝트(NPP)이다. 작년 5월 국토교통부는 차세대 건축가 육성 사업을 발표했는데 명시적으로 ‘프리츠커상을 받을 만한 인재’를 선정해 해외 인턴 경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염원은 이해하지만 몇 가지 잘못된 진단과 처방의 결과라고 본다.

우선, 소수 유명 건축가가 주도하는 영웅주의적 태도에서 지역과 환경의 개별적인 해결로 관심이 옮겨가는 세계 건축 경향의 변화를 포착하지 못한 발상이다. 둘째로 이미 많은 한국 청년 건축가들이 세계 유수의 사무소에서 경험을 쌓고 있으며 오히려 이들이 귀국해 마주하는 현실을 살펴야 한다. 그들뿐 아니라 묵묵히 작업에 정진하는 젊은 건축가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다.

셋째, 냉정히 말하자면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건축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다. 상은 그 성과를 인정해서 주는 것이며 국가를 대표해 작업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성취를 국적별로 숫자를 세는 것은 일종의 전체주의적 관점으로 시대착오적이다. 마치 올림픽에서 성과를 위해 꿈나무를 골라 키우던 80년대 스포츠의 엘리트주의가 건축에서 되살아난 듯한 느낌이다. 다만 건축이 사회 전반의 수준을 반영하며 건축가가 독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과 토양이 부족해서는 아닌지 되돌아보는 일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올해 수상자들의 소감에 귀 기울여보기를 권한다. “우리 작업의 핵심은 건축이 (인간의 삶에) 중요하다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건축은 인류가 발명한 문화적 공간 현상입니다.” 건축을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고민할 만큼 성숙했을 때 상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겠는가.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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