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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전문가 에세이의 인기



혼자 놀기 좋은 세상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로 연결돼 언제 어디서든 일을 하다가도 바로 놀기도 한다. 일과 놀이의 경계도 분명하지 않다. 잘 노는 사람이어야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파죽지세로 인기를 끌어 짧은 기간에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유튜버를 보라! 그들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놀이처럼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세상이 돼 가족, 사회, 세계로 이어지던 사회화 과정은 생략되기 시작했다. 이제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우주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부터 찾아야만 한다.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큰 질문(빅 퀘스천)부터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빅 히스토리다. 한집에 살아도 자기만의 방으로 바퀴벌레처럼 스며들어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는 가족은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 모두가 전인미답의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화면이 다르면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충고하려 들면 갈등만 커진다.

가족 단위로 즐기던 멜로드라마나 사극은 점점 인기가 시들해진다. 드라마의 원작은 웹툰이나 웹소설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독립적인 삶을 사는 전문직의 젊은이가 아니면 대체로 외면당한다. 그들은 보편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저마다 확고한 가치관의 소유자이면서 전문화된 특별한 취미도 갖고 있다.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물들이 액정화면을 장악해가고 있다. 온라인동영상(OTT) 서비스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전문화된 직업을 가진 소수 취향의 장르물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에세이 시장 또한 다르지 않다. 세계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주제의 에세이 인기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의 진솔한 삶이 담긴 에세이 또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스펙트럼이 다양해지고 있다. ‘검사내전’(김웅, 부키)이나 ‘골든아워’(이국종, 흐름출판)의 인기에 이어서 좀 더 ‘마니악’한 직업의 소유자들이 발표한 에세이들이 등장해 호평을 받고 있다.

일본 소설을 300여권이나 번역한 권남희의 에세이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상상출판)는 번역이라는 고단한 노동을 하소연하는 것 같지만 번역가라는 직업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데뷔한 소설가이지만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하는 도제희의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샘터)는 퇴사라는 아픔을 겪은 뒤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으면서 찾아낸 생존법을 이야기한다. 잡지 편집장인 이마루의 ‘아무튼, 순정만화’(코난북스)는 순정만화만으로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독자가 책에서 구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고성장 시대에는 남보다 빨리 지식을 챙기면 앞서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성장 시대이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다. 지식쯤이야 검색하면 바로 해결될 것처럼 여겨진다. 독자들이 책에서 갈구하는 것은 지성(혹은 지혜)이다. 지금 인간이 하고 있는 일의 절반 이상은 10년 이내에 인공지능(AI)이 대체할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은 그런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를 갈구한다. 그런 이들이 전문가들의 에세이를 열심히 찾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세계를 맹렬하게 달려온 사람들이면 된다. 세상에서 닮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정도로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어도 수많은 대중을 울릴 수 있다. 학자들이 근엄하게 가르치려 드는 책은 독자들이 외면하는 반면, 한 세계를 열심히 살아낸 사람의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자신만의 삶의 지혜를 담은 에세이를 한 번 써보지 않으시겠는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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