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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거리의 사람들



수도권 전동열차와 새마을호 KTX 등이 정차하는 경기도의 중심, 수원역엔 하루 수십만명의 이용객이 오간다. 평일인 지난 19일 오전 11시 방문한 역에선 그러나 오가는 사람을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개찰구 옆 대형 TV 앞에서나마 남루한 옷차림의 몇몇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를 알리는 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이며 앉아 있었다. 이른바 거리의 사람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족과 함께 자발적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인파가 사라진 거리엔 새로운 취약계층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스스로 60세라고 밝힌 수원역 한 남성은 “새벽에 일어나 역 근처 소개소에서 일할 곳을 구했는데 오늘도 허탕을 쳤다”면서 “노점이고 노동 일이고 일감이 완전히 끊겼다”고 했다. 교회 공동체들이 운영하는 수원역 무료 급식시설 ‘정(情)나눔터’에서 받은 긴급 구호 음식물 꾸러미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1997~98년 외환위기 당시 모습이 겹쳐졌다. 평범한 이웃의 가장이 실직 후 서성이다 어렵게나마 한 끼 배고픔 해결을 위해 교회 공동체의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다.

바이러스는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로 침투한다. 코로나19 역시 이단 사이비에 미혹된 신도들, 콜센터 밀집 장소에서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근로자들, 요양병원에서 집단 생활하는 노인들부터 찾아갔다. 이젠 거리로 나앉아 스스로 격리할 공간조차 얻기 힘든 이들에게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장기간 길거리 생활로 면역 체계가 약화되고, 방역을 위한 동선 파악조차 어려운 이들이다. 때문에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거리의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고 치료하기 위해 1억5000만달러를 우선 집행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영국에선 재난기금을 활용해 거리의 사람들을 부도 위기의 숙박업계에 수용하고 재생을 돕자는 제안마저 나오고 있다.

한국에선 교회들이 정부보다 한발 앞서 움직인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컵라면 5만개를 포함한 물품과 함께 전국노숙인시설협회 소속 7곳 기관의 3월 급식 비용 등을 일괄 지원했다. 예장통합 소속 영남신학대의 아신(芽信)신학연구소 회원들은 지난 12일과 19일 잠시 책상과 강대상을 벗어나 쪽방촌 주민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직접 포장해 전달했다.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19 집중 피해 지역에 속한 목회자와 신학자들인 이들은 생계가 어려워진 동네 소상공인들의 가게에서 필요 물품을 직접 구매했다. 그리스도인의 공적 책임을 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마음을 다해 실천하고 있다.

다일공동체도 지난 23일부터 쌀밥 도시락과 함께 생수와 손세정제를 넣은 ‘긴급 지원 키트’를 만들어 청량리역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나누고 있다. 발열 체크 뒤 손 소독을 하고 마스크가 없는 이들에겐 마스크도 새로 건넨다. 밥퍼 최일도 목사는 “도시락으로 음식을 배달하는 첫날, 봉사자가 당연히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임직원이 사무실을 비우고 밥퍼에 달려왔는데, 무려 일곱 분의 자원봉사자가 이른 아침부터 도시락을 위한 밥과 반찬을 만들어 주셨다”고 밝혔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잠시 멈춤의 실행으로 우리는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방역 체계의 구멍과 이웃의 어려움을 계속해서 맞닥뜨리게 된다. 이럴 때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배당에 모이는 예배냐 흩어지는 예배냐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전시에 준하는 지금은 세상에 파송돼 각자 삶에서 실천으로 드리는 예배 역시 소중해 보인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는 예수님 말씀을 기억한다. 코로나19로 곧장 추락하는 이웃을 돌보는 일이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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