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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는 시외로 나가 들판에 서서 큰소리로 출석을 부르려 한다// 매화 개나리 쑥 나싱개 원추리 산수유… 네 네 네 네 네 네… 봄날이 왁자지껄 시끌시끌 반짝이겠지’(졸시, ‘출석부’ 전문)

겨울 동안의 파업을 끝낸 나무와 풀들이 벌써 녹색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땅의 지붕을 열고 연초록들이 앳된 얼굴을 내밀어 오고, 햇살의 부리가 이 나무 저 나무의 수피를 쪼아댈 때마다 부화하는 병아리같이 꽃들이 가지 밖으로 환하게 부리를 내밀어 허공을 쪼아대고 있다. 봄밤은 새로이 태어난 생명들의 지저귀는 소리로 붐비고, 냇가에 놓인 돌을 들어 올리거나 내릴 때 흐르는 물이 잠시 물러났다 잽싸게 몰려들듯이 이 가지 저 가지에서 이파리와 꽃이 피어날 때 공중의 산재한 공기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몰려든다. 봄철의 공중에는 보이지 않는 주름이 자주 생겼다 펴지곤 하는 것이다.

양춘가절을 만나 만화방창하는 꽃과 초록들은 봄의 합주가 아닐까? 쟁쟁쟁 꽃과 초록들의 연주로 온도가 상승하는 소리 없이 시끄러운 봄밤. 누구는 술을 마시고 누구는 사랑을 하고 누구는 싸움을 건다. 꽃과 초록의 치맛말기를 빠져나온 향기와 음표가 가려워 못 견디겠다는 듯 지문을 남기며 공중을 마구 문질러대고 있다. 이스트 넣은 빵처럼 봄이 이렇게 마구 부풀어 오르니 비록 코로나19에 묶인 몸이라 한들 상춘객들 가슴이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들뜨는 마음을 달래려 몰래 현관을 나서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화창한 봄날 풋풋하고 싱싱한, 공장에서 막 출하한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탄력의 햇살로 눈이 부신 날은 까닭 없이 탈주에의 욕망으로 몸이 뜨거워진다. 확실히 봄은 위험한, 스프링의 계절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몸속에 스프링을 지니고 있다. 춘분을 맞아 만발한 꽃들도 줄기와 가지 속의 샘물이 피운 것이다. 갓 태어난 스프링이 뿜어내는 탄력은 얼마나 눈부신가. 내게도 누르는 힘이 크면 클수록 되받아 솟구쳐 오르는 쾌감으로 무거운 세상을 경쾌하게 들어 올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영원한 반동을 사는 스프링은 없다. 언젠가는 탄력의 숨을 놓아야 한다. 생의 반환점을 돌아온 지 오래인 나는 이제 반동과 탄력을 잃어가는 스프링에 대해 스스로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에 반비례하여 탈주에의 욕망이 커지는 것은 고사 직전의 소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처럼 본능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당혹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환장하게 빛나는 햇살은 나를 꼬드긴다. 어깨에 둘러멘 가방을 그만 내려놓고 오는 차 아무거나 잡아타라고 한다. 도화지처럼 푸르고 하얗고 높은 하늘이 나를 충동질한다. 멀쩡한 아내를 버리고 젊은 새 여자 얻어 살림을 차려보라고 한다. 지갑 속 명함을 버리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봄이 나를 충동질하고 부채질해도 이러한 내적 자아의 일탈 욕망이 찍어 누르는 일상적 자아의 힘을 이겨내기는 어렵다. 곧 진압되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고 만다.

나는 평생 탈주를 꿈꾸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올봄에는 신이 햇살과 바람의 키보드를 두들겨 지어낸 시문(詩文)이나 실컷 탐독하여야겠다. 천문(天文)! 산과 들의 지면을 가득 채운, 갓 태어난 순록의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내 영혼은 푸르게 물들어 가리. 다가오는 주말에는 시외와 시골 오일장에나 한 번 들러야겠다. 골치 아픈 시국을 잠시 내려놓고 대신 노점 좌판 수북하게 쏟아져 나온 연초록 장정의 신간들이나 실컷 읽어보고 싶다. 신께서 토지(土紙)에 공들여 쓴 한 끼니 양식들을 사들고 와야겠다. 이 책들은 입에 넣고 씹어 읽어야 더욱 깊은 맛이 우러나리라.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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