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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수 칼럼] 장기전이다, 지치지 말자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 사태 정부 정책·의료 시스템만으론 한계… 연대·공동체의식 중요
국민 마음 모아 대응하면 국격 높이고 선진국 진입 발판 마련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

스페인 독감은 1918∼1920년 전 세계를 휩쓸면서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페스트는 1347∼1352년 유럽을 중심으로 크게 번져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인 1800만명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페인 독감과 페스트로 인한 사망자 숫자도 숫자지만 눈에 띄는 것은 이 역병들이 오랫동안 창궐했다는 점이다. 스페인 독감은 2년, 페스트는 5년 동안 계속됐다.

지난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지 두 달이 넘었다. 코로나도 오랫동안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는 현재 3000명가량인 미국인 사망자가 10만~20만명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만들어져 세계적 대유행이 종식되려면 최소한 1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한마디로 장기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긴 호흡이 필요하고 지치지 말아야 한다.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지만 이와 병행해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는 방법도 찾아내야 한다. 확진자가 수천명인 스웨덴의 경우 장기전에 대비해 처음부터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집단면역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집단 내 일정 비율 이상이 면역력을 갖게 되면 집단 전체가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갖게 될 것이란 기대 속에 유럽 다른 국가들과 달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직장인은 회사로 출근한다. 하지만 리스크가 큰 이런 방식을 우리가 채택할 수는 없다. 정부가 코로나 유행 장기화에 대비한 생활방역 체계를 검토 중이다. 생활방역은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조화로운 형태의 방역을 뜻한다. 집단면역 방식이나 봉쇄와 차단이 아닌 방역과 일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9일부터 순차적으로 실시되는 온라인 개학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방역 당국과 의료진은 물론, 국민도 지쳐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육체적·심리적으로 무너지는 사람들도 많다. 정부가 소득 하위 70% 가구에 지급하는 40만∼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도 일회성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장기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방역 당국의 투명하고 신속한 대응과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의료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국민이 마음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의병처럼 전국에서 대구로 집결해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이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배달하는 식당 주인들, 이들의 임대료를 감면해 주는 건물주들, 이런 모습을 보고 어렵게 모은 돈을 성금으로 내놓는 국민들, 자가격리된 확진자에게 생필품을 전달해주는 자원봉사자들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연쇄적으로 반응하고 마음을 모을 때 비로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독감이 세계적 대유행을 한 지 100년이 지났다. 전염병 학자들은 그동안 범유행성 독감이 대규모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독감 바이러스는 종류가 너무 많고 돌연변이를 거듭하기 때문에 막을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에 또 다른 숫자를 가진 코로나가 생길 수도 있다. 피할 수 없다면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지원을 요청할 정도로 방역에 관한 한 미국보다 강대국이다. 의료인인 미국 교민이 최근 전화를 걸어와 “한국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신속한 진단과 치료, 격리, 드라이브스루, 확진자 동선 공개 등은 어떤 선진국도 못 한 일들이다. 완치율은 50%를 넘어 60%로 다가가고 있고 사망률은 1%대다. 물리적 봉쇄와 차단이 아닌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런 일들을 해내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가 창궐한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사재기도 없다. 우리가 선망하고 부러워하며 해외여행 로망의 대상인 유럽 등 세계 각지의 선진국들이 이번에 민낯을 드러낸 것과 대비된다.

코로나 위기는 역설적으로 한국이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다. 시민들은 더욱 성숙해지고 이웃과 공동체를 더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세계적 히트상품이 된 진단키트를 발판으로 바이오산업 등이 육성되고,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를 계기로 디지털 교육 혁명과 원격 화상회의 시스템 구축 등이 이뤄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의 미래는 코로나와의 장기전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달려 있다.

논설위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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