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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얼마 전 국민일보에 실린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인터뷰를 보고 소설가 김훈 선생이 전화를 주셨다. 최 교수가 공생과 공존, 공영이라는 훌륭한 메시지를 전했는데, 기사 제목이 아쉬웠다는 말씀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발병원으로 알려진 박쥐부터 재난기본소득, 4·15 총선까지 최 교수의 혜안이 거침없이 뻗어 나간 ‘바이러스에겐 77억 인간이 블루오션… 매년 전염병 올 수도’라는 기사에 대해서였다.

“최 교수님 말씀은 인간이 박쥐 사는 데를 들쑤셔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냅두면 다 되는데, ‘냅둬’ 두 글자를 못해서 이렇게 됐다는 거죠. 그리고 다윈주의가 사회경제적으로 확산되면서 우리는 지금 무한경쟁과 이윤추구, 적자생존이 사회와 인류의 작동원리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사자와 하이에나가 맞짱을 떠서 승부를 겨루는 게 자연생태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 공존하는 삶의 질서도 있다는 메시지가 더 중요한 거지요.”

얄팍한 속내를 꿰뚫어보셨던 거다. 좋은 내용을 담았지만 n번방 같은 상상초월의 범죄물과 비례위성정당처럼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로 뒤덮인 뉴스 속에서 ‘공생’을 내세워서는 주목받기는 어려울 거라는 계산으로 뽑은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어설픈 낚시질이었지만 다행히 눈밝은 많은 독자들이 최 교수의 공존 메시지에 공감하는 댓글을 남겨주었다.

인터뷰에서 기사에 싣지 못한 내용 중에는 자연생태와의 경계선을 넘은 인류에 대한 우려가 기후변화와 생태복지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되는 대목이 있었다. 최 교수는 “세계에서 좀 산다고 하는 나라 중에 선거에 기후변화 얘기가 전혀 안 나오는 건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이번 총선에서 기후변화 이슈가 외면받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또 삶의 질과 뗄 수 없는 자연생태의 건강성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을 지적했다. 예컨대 미세먼지의 경우 생태계를 깨끗하게 만드는 쪽이 미세먼지로 인한 의료 비용을 고려했을 때 경제적으로 나은 것은 물론이고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생태복지보다 경제발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어느 자산관리사는 코로나19 이후의 금융시장을 전망하면서 2008년 금융위기 때 평생 쓸 만큼 재산을 불린 자산가가 내내 또 다른 위기를 기다렸노라는 얘기를 했다. 다음번 위기에는 아들이 평생 쓸 돈을, 그 다음번엔 손자가 평생 쓸 재산을 만들 거라면서. 그러나 이런 탐욕적인 승자독식 성공담의 주인공보다 ‘너무 적어서 죄송하다’며 마스크 11장을 놓고 사라진 지체장애인을, 공장에서 초과근무한 수당을 모아 기부한 아프리카 난민들을, 쌈짓돈을 털어 선뜻 성금을 내놓은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를 기억하고 싶다. 이들이야말로 남을 누르고 내치는 게 아니라 껴안고 나누는, 맞짱 대신 공생의 일상을 사는 작은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새삼 마음에 들어오는 노래가 있다. 시적인 가사로 잘 알려진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라는 곡이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라는 짧은 가사가 반복되는 아름다운 곡이다.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됐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코로나19 이후를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그때의 풍경은 이전과 같이 생태환경을 들쑤시고, 약육강식의 정글로 돌아가는 ‘복귀’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응당 있어야 할 제자리로 돌아오는 ‘회복’이 시작되는 풍경이었으면 한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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