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데스크시각] n번방 보도가 불편한 분들께



아내는 얼굴을 찡그린 채 신문을 서둘러 덮었습니다. 저도 불편했습니다. n번방 잠입 취재기가 국민일보에 보도됐을 때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읽는 내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희미하게나마 실체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상상 속에서도 떠올리기 힘든, 상상보다 훨씬 끔찍한 현실의 모습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굳이 이렇게 보도해야 했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n번방에 대한 문제는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여성단체 등을 중심으로 제기됐고 수차례 언론 보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참혹함은 널리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졌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가중됐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기존의 범죄와 다르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줘야 했습니다. 이 문제를 젠더 갈등의 한 사례쯤으로 치부하지 못하도록 알려야 했습니다.

기사에 포함된 일부 단어와 상황 묘사를 들어 선정적 보도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신문은 오래도록 ‘강간’이라는 단어를 회피해 왔습니다. 과거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대신 다른 단어를 썼습니다. 그렇지만 그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이 단순한 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착취가 포함된 지속적인 범죄임을 알리면서 가해자들을 향한 날을 세우기에 기존에 썼던 단어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피해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신문의 오래된 관습을 벗어던졌습니다. ‘노예강간’의 현실이 보도된 후에야 한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던 ‘성착취’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일보 보도에 포함된 묘사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n번방 속에는 훨씬 더 위험하고 잔혹한 것이 많습니다. 피해자들의 현실을 전할 수 있는 사례를 골라 독자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표현으로 다듬었습니다. 특별취재팀의 잠입 취재기사 뒤에 붙어 있는, ‘피해 사례는 2차 가해를 우려해 독자가 n번방의 잔인성을 판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소한도로 표현했다’는 언급은 그런 의미입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보도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지난주 국민일보는 ‘텀벡스’라는 플랫폼 속 성착취 영상 거래를 보도했습니다. 이전에 단 한 번도 한국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던 곳입니다.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던 이들의 호기심을 부추기고 새로운 플랫폼을 알려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2, 3차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수사 당국에 새로운 공간의 존재를 알리고 호기심 많은 이들에게 이 플랫폼 역시 자유롭지 않음을 경고하려는 의미였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때마다 고민도 이어지겠지요.

돌이켜보면 ‘깔창 생리대’ 보도를 할 때도 그랬습니다. 일부 네티즌과 시민단체 등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애써 외면하는 듯했습니다. 생리 혹은 생리대라는 단어만 등장해도 질겁했습니다. 그런데 깔창 생리대라는 표현이 신문에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 단어를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현실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국민일보의 깔창 생리대 보도가 안타까운 현실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됐을 뿐만 아니라 생리, 생리대라는 단어의 왜곡된 이미지를 걷어내는데 적지 않은 힘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n번방 보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을 전하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례와 표현을 고민했고, 타협하고 타협한 끝에 보도 수준을 정했습니다. 앞으로도 더 살피고, 더 논의하고, 더 타협할 일이 많겠지요. 다만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알리는 데 주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