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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 일상



얼마 전 취재를 하면서 만난 한 음식점 사장님은 텅 빈 가게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게 되게 작죠? 손님이 없을 때는 더 작아 보입니다. 꽉 차면 희한하게 더 넓어 보인단 말이죠. 부자가 되는 기분이라 그런가. 요즘 이렇게 텅 빈 가게를 한참 보고 있을 때가 많은데, 심난하기만 할 것 같죠? 그래도 문득문득 안심이 되더라고요.” 그의 심정을 완벽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어떤 마음인지 자못 짐작이 됐다. 그를 안심시키는 것은 그가 매일 지켜내고 있는 ‘일상’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출근을 하고, 손님이 오면 힘내서 음식을 만들어 내고, 같은 시간 퇴근을 한다. 힘든 날들이지만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일상의 리듬을 이어간다고 해서 일상을 치고 들어오는 온갖 걱정거리들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납기일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대출 이자도 꼬박꼬박 빠져나가고, 다달이 내야 하는 임차료도 그대로다. 그래도 그는 버텨내고 있다. 텅 빈 가게를 보면서도 힘을 낸다. 평범한 날들에 그랬던 것처럼 위기에 처한 지금도 이 가게를 지켜 가려 애쓴다. 그것이야말로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코로나19가 몰고 온 어려움 속에서도 이렇게 일상을 붙든 채 버티고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침범하기 전처럼 지내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사실상 일시정지시켜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에 내몰린 것은 아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감염 지역에 머물다 온 게 아닌 이상 대부분은 원한다면 외출을 할 수 있다.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고, 학교도 수업을 이어가려는 방법을 찾고 있다. 기업들도, 자영업자들도 매일같이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동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만 가도 생필품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온라인 쇼핑몰 새벽배송과 음식점 배달 서비스도 무사히 작동하고 있다. 확진자는 계속 늘고 있지만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다. 비상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의 시스템은 대체로 건재하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우리나라를 ‘경제를 멈추지 않고도 방역을 이어가는’ 유일한 나라로 꼽고 있다. 일부 도시에 대해 부분적인 입국 금지 조치를 하긴 했어도 단 한 번도 ‘전면 봉쇄’나 ‘전면 금지’로 대응하지 않았다. 정부 대응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최대한 일상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는 갖은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선진국에서조차 이동의 자유를 차단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역동적인 민주주의(vibrant democracy)’를 지켜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던 시기, 방어벽을 세우기에만 급급했던 나라들은 지금 긴박한 상황에 처했다.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골을 먹은 것처럼 전 세계가 속절없이 바이러스의 공격에 무릎을 꿇고 뒤늦게 강력한 조치로 대응하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19 발현 초기부터 차근차근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나간 우리나라의 대응 방식은 세계에 귀감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도 ‘록 다운(lock down)’ 수준의 강력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의 시스템이 지금도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은 ‘극약처방’을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강력한 대응으로 맞선다면 애써 지켜온 일상의 흐름은 마비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약속을 잘 지키면서 각자의 일상 또한 이어가는 것, 느리게 걷는 것 같지만 바르게 걷는 것일 수 있다. 일상을 온전히 복원하기 위해 불완전할지라도 일상의 리듬을 잃지 않는 게 필요하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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