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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세계가 멈춘 시간에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멈추길 바라는지 모른다. 기후위기로 인한 파국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상을 멈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을 멈춰 세운다는 건 상상으로나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그래서 발전의 속도를 좀 늦추자고, 조금 더 불편하게 살자고 얘기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멈춰버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를 멈춰 세웠다. 사람들은 집 안에 갇혔고, 사무실과 공장은 문을 닫았다. 자동차·비행기 운행도 중단됐다. 중국과 유럽,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에서 휴교, 이동제한, 직장폐쇄, 입국금지 등 사상 초유의 봉쇄 조치가 이뤄졌다. 최근 몇 주간 세계적 규모로 진행된 봉쇄 속에서 사람들은 세상이 멈춘 모습을 처음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세계 봉쇄의 시간은 환경주의의 측면에서 보자면 전례 없는 대규모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발전소를 끄고 공장을 멈추고 자동차를 안 타면 지구 환경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세계적 규모의 실험. 인도 환경단체인 케어포에어의 공동 창립자는 “지난 10년간 델리에서 요즘처럼 파란 하늘을 본 적이 없다”고 CNN에 말했다. 그러면서 “이 끔찍한 위기 속에서 우리가 밖으로 나가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 한 가닥 희망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봉쇄된 대도시 위로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인도 뉴델리는 세계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각한 곳으로 유명하다. CNN은 ‘코로나19 봉쇄가 인도의 대기오염에 드라마틱한 영향을 미쳤다’는 제목의 최근 기사에서 3월 20일 ㎡당 91㎍을 기록했던 뉴델리의 초미세먼지(PM 2.5 이하) 농도가 1주일 후인 27일 26㎍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인도는 3월 25일 전국 봉쇄령을 내렸다.

홍콩 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 일요일 아침 델리주의 대기질지수(AQI)가 42를 기록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경이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12월에 델리의 대기질지수는 최대 999까지 악화됐다. 미국 IT 매체 와이어드는 나사(NASA) 자료를 인용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로 지난 1월부터 도시 전체가 봉쇄됐던 중국 우한시에서 대표적 대기오염 물질인 이산화질소 농도가 10∼30% 낮아졌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9일 이동금지령이 내려진 이탈리아에서도 밀라노 등 북부 지역에서 이산화질소 농도가 약 4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와이어드는 “팬데믹이 국제적으로 거대한 규모로 대기오염 하락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봉쇄 이후 드러난 파란 하늘은 지금과 같은 심각한 대기오염을 초래한 것은 인간이었다는 걸 알려준다. 또 대기오염이나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우리의 대응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위안을 제공한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극단적 봉쇄를 받아들인 것처럼 건강에 대한 위협은 비상한 반응을 유발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해마다 세계적으로 700만명이 대기오염으로 조기 사망한다. 대기오염이나 기후위기를 바이러스만큼 치명적인 위협으로 인정하게 된다면 이에 맞서 세상을 멈추는 일은 또 가능할지 모른다.

바이러스에 맞선 세계 봉쇄의 경험은 ‘극단적 전환’에 대한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동안 기후위기를 외면해온 이들은 “성장을 멈추자는 말이냐”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며 환경주의자들을 비판해 왔다. 이제 환경주의자들은 “그렇게 하면 왜 안 되는가? 코로나19에 맞서 세계를 멈춘 적이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김남중 국제부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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