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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긍정 바이러스



역설적이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긍정 바이러스’도 퍼뜨리는 것 같다. 각국이 천문학적 규모로 쏟아붓는 경기부양책들엔 기발한 아이디어에 인간적인 면까지 녹아 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더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학습효과가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실업 대책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3차 부양책 가운데 식당 세탁소 미용실 등을 돕기 위해 3500억 달러가 투입된 소상공인 대책은 은행을 통해 업소당 1000만 달러까지 0.1% 이자로 돈을 빌리는 구조다. 겉으로는 한국의 소상공인 대출제도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종업원들을 해고하지 않을 경우 이자뿐 아니라 원금을 탕감해주는 융통성까지 발휘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인기가 너무 많아 3500억 달러가 불과 몇 주 만에 바닥날 기미가 보이자 미 정부와 의회는 2500억 달러 추가 재원 마련에 나섰다.

일선 기업들도 예전 같으면 정리해고가 당연시됐으나 이젠 가급적이면 일자리를 유지하려 한다. 무급휴가(furlough)를 늘리거나 임금삭감을 통해 고통을 분담하려는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일시해고로도 불리는 이 제도는 당장 일자리를 떠나더라도 건강보험 등 기본적인 복지혜택이 유지될 뿐 아니라 실업수당도 받을 수 있다. 무급휴가를 가지 않는 종업원은 대신 임금삭감을 통해 고통을 분담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진정돼 사람이 필요할 때 바로 재고용할 수 있다는 점뿐 아니라 종업원과 유대감을 유지하려는 배려가 깔려 있다. 최근 2주 동안 미국 실업수당 신청자가 1000만명에 육박한 것도 이들 무급휴가자가 급증한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힐튼호텔처럼 일시적으로 영업에 큰 타격을 받은 기업들은 이번 사태로 오히려 사람이 부족해진 아마존 같은 기업에 종업원 취업을 알선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금융위기 여파로 5년 이상 10%가 넘는 실업률에 시달려온 프랑스의 경우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자존심을 접고 2차 대전 앙숙인 독일의 제도를 과감히 벤치마킹했다. 기업이 정리해고 대신 무급휴가를 보낼 경우 종업원 월급의 80%를 내주기로 한 것이다. 500억 달러가 투입된 이 대책에 분당 수천개 기업이 신청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프랑스 노동부의 설명이다.

주식시장에서는 뉴욕 월가나 런던 증권가가 까무러칠만한 조치도 내놨다. 미국과 영국은 정부 자금 지원을 받는 기업이나 은행의 경우 주주들에게 배당금 지급을 제한하거나 자사주 매입을 금지토록 했다. 미국 대기업의 절반가량은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부양도 당분간 자제키로 했다고 한다. 주주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방법까지 동원한 셈인데 금융위기 당시 금융지원 정책이 ‘월가의 1%’만 배부르게 했다는 지적을 감안한 것이다. 이 때문에 런던에 본사가 있는 홍콩 은행인 HSBC 주주들이 배당 금지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미국 등이 찬사를 보내며 벤치마킹한 우리 방역 당국의 ‘드라이브스루 코로나 선별진료소’처럼 우리도 다른 나라에서 효과를 보는 대책들을 우리 형편에 맞게 과감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도 1주일 단위로 민생 대책을 만들며 그나마 부족한 재정을 털어 경기를 살리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외식·항공산업 등에 대한 선결제 소비 등 ‘착한 소비’ 캠페인은 어려움에 처한 업종과 자영업자들이 재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획기적 대책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처럼 기발하고 착한 아이디어가 지구촌에 바이러스처럼 퍼져 위기 극복에 기여할 것을 기대해 본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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