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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특별한 나들이



최근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 문자 투표에 참여한 사람만 700만명을 넘어설 정도였다. 자연스레 모이는 사람마다 누가 더 잘했는지 의견을 나눴다. 버스에서 우연히 건너 들은 대화도 비슷한 얘기였다. 그중 도드라지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마음만 있으면 뭐해? 표현을 해야지.” 귀찮아서 투표하지 않았던 친구를 향한 목소리였다. 순간 어느 해 나들이가 떠올랐다.

부모님은 어지간해선 일요일에도 세탁소 문을 닫지 않았다. 야근에 시달리느라 주말밖에 시간이 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 뒤에는 하루를 쉬면 놓치게 될 이익을 따지는 마음도 있었다. 그 시절 부모님은 더 버는 일과 덜 쓰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 함께 나들이를 갔던 기억이 거의 없었다. 요즘처럼 사방이 꽃으로 가득하면 얼마간 간절해지기도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겨우 근처 하천에 핀 개나리를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언젠가 세탁소 문을 닫고 온 가족이 나섰다. 그때 아버지는 손님에게도 단호했다. 매번 빨리 해달라고 닦달하던 이도 그날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걸음을 이어가던 아버지는 평소와 다른 얘기를 했다.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거나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게 아닌 미래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오늘은 노는 날 아니냐고 묻자 아버지 목소리에는 날이 섰다. 아버지가 멈춰 섰을 때야 깨달았다. 그날은 투표하는 날이었다.

힘든 일에 놓였을 때 아버지가 어린 내게 건네준 희망은 두 가지였다. 알고 보면 다들 고만고만하다는 사실과 앞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였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미래는 어쩐지 막연했다. 내 표정을 읽은 아버지는 넌지시 투표 얘기를 꺼냈다. 투표소에 들어간 부모님을 기다리는 동안 ‘깨끗한 선거!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라는 표어를 유심히 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다음 세대’라는 글씨가 유난히 굵고 진해 보였다.

“너라면 누구 뽑을래?” 투표를 마친 아버지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아직 투표를 못 하는 나를 약 올리는 말 같아 괜히 입술을 비죽였다. 그러면서도 밖에 나가 벽에 붙은 선거 포스터를 유심히 봤다. 그날 아버지는 버스 안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비슷한 말을 꺼냈다. 한 번 놓친 투표는 되돌아가 다시 할 수 없다거나 표현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들. 돌이켜보면 내게 건네준 두 가지 희망은 아버지가 그 시절을 견디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이십오 년이 지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선거는 1948년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선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초기에 사용되던 목재투표함은 철로 만들어졌다가 무게와 부피를 줄일 수 있는 알루미늄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강화플라스틱이 쓰이고 고유 식별번호가 내장된 전자칩도 부착돼 있다. 기표용구도 처음에는 규정이 없어 당시 구하기 쉬웠던 탄피나 볼펜대가 자주 보였다. 지금은 인주가 내장된 일체형 기표용구가 쓰인다. 기술의 발달로 개표 결과가 나오는 시간도 단축돼 예전보다 빠르게 국민의 뜻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투표율이 높아진다고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인지 시대의 요구와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표어도 선거에서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공익광고에서는 ‘첫 선거’를 내세우고 있다.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나 이번 선거는 처음으로 읽힐 것이다. 이제 막 직장에 발을 딛는 순간, 은퇴와 동시에 경제적 어려움에 놓이는 시기, 아이의 걸음마처럼 삶은 매번 처음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처음은 설레면서 동시에 신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투표와 닮았다. 나에게도 올해는 아버지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노령연금을 수령하신 후 첫 선거인 셈이다. 이번 선거일에도 어떤 아이는 부모님과 함께 특별한 나들이를 할 것이다. 아이가 커서 투표할 때쯤이면 나처럼 그날 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전석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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