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 제 닭 잡아먹기’란 말이 있다. 소경이 주인 없는 닭을 잡아먹고는 횡재라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자기 닭이었다는 뜻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총선까지 맞물려 남발되는 포퓰리즘 정책에 들어맞는 이야기다.
각 정당이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 대응책이라며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국민 70%에게 혹은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겠다고 한다.
이 돈은 어디서 나는 걸까. 정당에서 주는 돈은 물론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낼 세금으로 충당될 돈이다. 온 국민이 100만원씩 받는다고 가정할 때 훗날 모든 국민이 세금을 100만원씩 더 내야 한다면 ‘소경 제 닭 잡아먹기’가 된다. 그러나 1인당 100만원씩 받고 120만원씩 세금을 내야 한다면, 100만원은 안 받은 것만 못하다.
왜 그렇게 될까. 국민 각자에게 100만원씩 지급하기 위해서는 홍보비, 행정비,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이 20% 정도 추가로 들기 때문이다. 이를 정책이나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드는 간접비용(overhead cost)이라 한다. 그래서 복지 혜택은 대상자를 정확히 파악해 차등적으로 혜택을 줄 때 가장 효과적이며 전체 국민의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재난극복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한다고 한다. 우리 빚을 자녀세대에 넘기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자녀세대는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할 상황이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960년 6.16명에서 2000년 1.48명으로, 급기야 2019년에는 0.92명까지 떨어져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가 됐다. 한 종족이 유지되기 위해선 합계출산율이 2.1명이어야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조만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우리 자녀 1명의 세금으로 2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지금 가장 절실하고 애국적인 선거공약은 출산율을 효과적으로 높이는 정책이다. 자녀들에게 더 많은 빚을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20년 국가 예산은 512조가 넘는 사상 최대 슈퍼예산이다. 어려울 때는 긴축하는 게 마땅하다. 예를 들어 올해 예산의 15%를 재난극복기금으로 작정하고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 남은 85% 예산으로 올해를 산다면 우리 고통을 다음세대에 넘기지 않아도 된다.
선거에서 무조건 이기고 보겠다는 심산으로 선심성 대중영합주의 선거공약을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후부와 정당은 냉철하게 표로 심판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과 장·차관,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들이 앞장서서 월급의 30%를 2년간 코로나19 재난극복기금으로 책정한다면 온 국민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따를 것이다.
한 지인은 지난달 회사의 통지를 받고 10일간 무급휴가를 썼다. 이번 달에는 15일간 무급휴가를 써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라 한다. 공무원이 월급의 2%를 코로나 재난극복기금으로 내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9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사태 속에서 전 세계를 감동시켰던 ‘금 모으기 운동’ 같은 애국운동이 촉발될 수 있다. 직장인들도 각자 월급의 2%를 재난극복기금으로 내놓는 운동으로 번져갈 수 있다.
국민 모두가 기꺼이 고통을 분담하며 한국경제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로 뭉칠 때,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나라는 한층 더 성숙한 선진 한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용희 교수(가천대 경제학과)
약력=서강대 경제학과 및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 경제학석사, 예일대 국제개발경제학석사. 유엔개발계획(UNDP) 내셔널 컨설턴트, 국제교류협력기구 이사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