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290장(통 412)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42장 29절~43장 14절
말씀 : 곡식을 구하러 이집트에 갔던 아들들이 긴 여행에서 돌아와 그간 일들을 아버지에게 들려주자 야곱은 맥이 풀렸습니다. 시므온이 이집트에 볼모로 사로잡혀 있다는 이야기 외에는 어떤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뒤이어 구덩이에 던져진 시므온을 구하려면 막내 베냐민을 이집트로 데려가야 한다는 말을 듣자 야곱은 분노하고 맙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자식을 잃을 수 없다.” 그런데 야곱의 이 말에서 우리는 이상한 뉘앙스를 발견하게 됩니다. 베냐민을 ‘내 아들’이라 칭하면서 다른 아들들을 ‘너희’라고 표현함으로써 마치 아들이 베냐민 하나뿐인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요셉에게로 향했던 야곱의 왜곡된 편애는 요셉을 잃고 난 이후 베냐민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지난날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과 대면했던’ 믿음의 사람 야곱이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고난 앞에서 그는 하나님께 무릎 꿇지 않습니다. 제단을 쌓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야곱은 한 번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야곱에게 닥친 고난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온 가족을 구원하시려는 계획 가운데 일부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에게 ‘해가 미쳤다’는 관점으로만 상황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일하심과 섭리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눈앞에 닥친 고난만 바라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결국 야곱은 아들들을 다시 이집트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들이 말합니다. “동생을 데려가야 또 다른 동생을 살릴 수 있습니다.” 야곱은 난감한 현실 앞에서 아들들을 꾸짖습니다. “너희는 어쩌자고 또 다른 동생이 있다고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해 버렸느냐. 거짓말로 둘러댔어야지!” 이 순간 야곱은 자신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거짓의 사람이라는 천성을 드러냅니다. 본문의 배경은 야곱(속이는 자)의 이름이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스라엘’로 바뀌고 난 이후였지만 야곱의 본성은 변한 게 없었습니다.
야곱은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보내면서 이집트 총리에게 줄 선물도 함께 보냅니다. 옛날 자신이 형 에서라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사용했던 그 방식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방식입니다. 야곱은 이를 반복하며 하나님께 그 어떤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야곱의 이 모습은 하나님보다 자기 지혜를 의지하는 연약한 인간의 처세술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보낸 선물은 요셉에게 협상 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거부와 회피, 책임 전가, 협상과 타협, 체념. 야곱은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인간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도 : 하나님, 내게 찾아오는 불행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해 주옵소서.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명호 목사(서울 혜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