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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생의 문제… 예배에 답이 있다



‘수학의 정석’ ‘성문종합영어’ ‘한샘 국어’ 거의 고전에 가까운 학습교재들이다.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풀 것인지 가르침을 주는 교재다. 이뿐이겠는가. 모든 교재에는 많은 문제가 실려 있다.

그러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에는 답도 있다. 인생의 문제는 학습지 안에 자리 잡은 고정된 문제보다 더 복잡하다. 아무리 복잡한 인생의 문제라도 확실한 답이 있다. 그 답안지는 어디에 있나. 여기에 있다. 예배다.

예배에 모든 답이 있다. 이삭은 이해 못 할 예배를 드리러 가면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들은 문제를 부여안고 예배의 자리로 갔다. 답을 얻었다. 과연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셨다. 그 예배의 자리에 번제물로 드릴 숫양이 준비돼 있었다. 숫양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도무지 세상에서 답을 찾지 못하던 자가 성전에 올라가면서 이렇게 외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예배자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답을 주실 것을 확신한다.

예배에 출석하는 것으로만 스스로 위안 삼는 사람이 있다. 예배출석에의 무거운 책임감을 완수하는, 괜찮은 사람들이 아닐까.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예배는 출석 이상의 것을 풍성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를 출석함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다. 예배에는 인생의 난제에 대한 “답”이라는 찬란한 선물이 준비돼 있는데 이 선물은 어찌하고 왜 매번 빈손으로 돌아오는가.

캄캄할 때였다. 예배에 나갔다. 빛을 찾았다. 두려울 때였다. 예배를 드렸다. 담대해졌다. 서러울 때였다. 예배에서 엎드렸다. 위로가 쏟아졌다. 예배에서의 답은 이처럼 포괄적일 때도 있지만, 구체적인 답을 주실 때가 더 많다.

수많은 예배자가 같이 있었는데 마치 나만을 위해 준비된 것과 같은 말씀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곧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무엇을 준비하시는가. 답을 준비하신다.

“밑줄 쫙”을 기억하시는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으리라. ‘한샘 국어’ 서한샘 선생의 학습방법이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밑줄 쫙”은 많은 사람의 뇌리에 남았다. 이것이 확실한 답이니까, 너무 중요한 것이니까 그 답 밑에 “밑줄 쫙” 그으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밑줄 쫙”보다 더 선명한 답을 예배에서 주신다. 그러므로 예배를 ‘집중’이 아닌 ‘산만’으로 드리는 자는, 인생의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더 ‘답답’해진다.

학습지에서 문제가 어렵다고 답안지를 빨리 찾아보는 것은 금물이다. 학창시절, 나는 그 금물을 자주 어겼다. 물론 안 좋았다. 인생 문제의 답을 예배에서 찾지 않고 방황하는 것은 금물이다. 나는 그 금물을 어기고 싶지 않다. 안 좋은 일을 내 생애에서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김성국 목사(미국 퀸즈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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