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5월 26일] 시간의 구덩이, 성숙의 옷



찬송 : ‘아 하나님의 은혜로’ 310장 (통 410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45장 1~28절


말씀 : 요셉이 이집트 땅으로 온 형들을 만나고 난 후 그들의 긍정적 변화를 미리 확신했거나, 이전과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예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형들의 속내를 알고 싶어 여러 모양으로 시험하기는 했지만, 미리 형들의 반응을 알았을 것이라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형들은 이전에 요셉이 알던 형들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어떻게든 살리려는 형들의 마음에 감동해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눈앞의 총리가 동생인 요셉인 줄 알지 못했던 형들은 ‘이 사람이 우리 앞에서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하고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동안 이집트 언어만 사용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들의 말인 히브리어로 말하는 게 아닙니까. 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때 아마 형들은 까무러칠 뻔했을 것입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을 쩍 벌리고는 할 말을 잊은 형들의 모습, 상상이 가십니까.

형들은 그동안 이집트 총리 앞에서 요셉이라는 동생이 죽었다고 말해왔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요셉은 짐승에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했습니다. 그동안 형들은 그들이 요셉을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눈앞에 요셉이 버젓이 살아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창 45:4) 22년 전 자신들의 손으로 팔아버렸던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지금 그들 앞에 서 있습니다. 미래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한번 희극 대본을 쓴다고 생각해 봅시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이 대사 이후의 이야기 전개는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까요. 막내 동생은 살리고 권선징악을 적용해 형들을 처벌하는 것이 상식적인 전개가 아닐까요.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에서 악한 의도를 가지고 주도적으로 해를 가한 사람들은 형들이지만, 그것마저도 사용해 눈에 보이지 않게 요셉의 삶을 이끌고 계셨던 분은 하나님이시라 고백합니다. 그것도 “먼저 보내셨다”는 표현을 세 번이나 사용하면서 말입니다.

어릴 적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던 요셉은 이제 형들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습니다. 어린 요셉에게는 채색옷과 꿈이 자랑이었지만 이제는 총리직마저도 자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채색옷을 벗겼던 형들에게 이집트의 좋은 옷들을 선물합니다. 돌아가는 길에도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며 상대의 옷을 벗기기 위해 서로 다투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지나온 삶에서 요셉도 변했습니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당사자에게는 고통스러운 말이지만, 고생과 연단의 시간들이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은 진리입니다.

기도 : 하나님, 삶의 시간 속에서 성숙하게 하옵소서. 믿음이 자랄수록 인격도 깊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닮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명호 목사(서울 혜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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