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5월 31일] 비전의 옷, 야망의 구덩이



찬송 : ‘주여 지난밤 내 꿈에’ 490장(통 542)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50장 19~20절


말씀 : 만약 ‘뭐든 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의 힘’이 주어진다면 여러분이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이 사회가 좀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책임감 있는 도덕적 의무를 요구하면서 비난하고 욕할 때가 많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좀 더 가진 자들이 감당해야 할 책무입니다. 그런데 가진 사람들을 욕하는 우리가 만약 그렇게 힘 있는 자리에 이르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비난하는 그 사람들처럼 살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있을까요. 돈 건강 권력 지식 지위 영향력 등 세상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을 모두 갖고도 착하고 순박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요셉 이야기에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 자신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는 것을 꿈꾼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이 총리라는 꿈을 꿨기 때문에 그 수많은 역경 속에서 인내했던 게 아닙니다. 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기에 하루하루를 인내했던 것뿐입니다. 믿음의 선택이 더 많은 고통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고 실행했습니다. 그러한 삶의 결과로 총리가 된 것이지 총리를 목표로 믿음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말로 비전과 꿈을 포장해도 우리 안에는 깊은 죄성이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 나라의 유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그럼에도 목사에게는 ‘교회’가 우상이 될 수 있고, 성도에게는 ‘복 또는 성공’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비전 또는 꿈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붙들며 추구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우리에게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의 사람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꿈꾸는 선한 일들도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꿈의 성취 여부에 상관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예배하며 살 수 있다면 그는 꿈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나 꿈과 소망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잃고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린다면 그는 하나님을 통해 꿈을 섬기는 사람, 곧 우상 숭배자로 변해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비전과 야망을 분별하기 힘들다면, 겸손과 섬김의 태도, 나의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 내가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추구하는 길을 향해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꿈을 섬기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까.

기도 : 하나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신앙마저도 도구로 삼는 불쌍한 인생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옵소서. 하나님의 비전과 나의 야망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명호 목사(서울 혜성교회)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