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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결혼의 비밀?



‘친구와 가장 빨리 갈라서는 방법이 뭘까?’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나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머뭇거리던 나에게 아버지는 ‘룸메이트를 하면 된다’고 했다. 어찌 친구가 룸메이트가 되면 원수로 변한단 말인가. 하지만 타인과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해외에 살며 전화를 자주 드리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좋은 며느리가 될 수 있지만, 한 집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때마다 식사를 차리는 며느리는 좋은 며느리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 살기로 서약한다. 다른 집에서 살며 연애할 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연인이지만, 결혼하고 한 집에서 살기 시작하면 불편한 사람이 된다. 노부부가 다정하게 손 잡고 산책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중년의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밥을 먹으면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진짜 부부라면 이야기 없이 자기 밥만 먹을 거라는 것이다. 이 우스갯소리에 박장대소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왜 같이 살기 시작하면 결혼생활이 힘들어지는 것일까? ‘격렬하게 사랑하고 있을 때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잘 생각하라’라는 유대인 속담이 있다. 우리는 왜 특정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이유가 있겠지만, 수많은 심리학 연구의 결과들을 살펴보면 오랜 세월 변하지 않고 부동의 자리를 지켜온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돈, 외모, 인품(성격)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예쁘고(잘생기고), 인품과 성격이 좋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다. 그럼 우리는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자신인가 아니면 상대방인가? 답은 명쾌하다. 상대방이 아닌 우리 자신이다.

이런 것을 ‘조건적 사랑’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삶에 이익이 되는 조건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 해가 되는 사람을 누가 감히 사랑하겠는가. 부부를 향해 서로 사랑하라는 설교와 강연 그리고 책이 즐비하다. (조건 없이) 사랑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듯 말이다. 그런데 자식을 사랑하라는 책은 별로 없다. 대신 교육과 양육에 관한 책과 강연이 넘쳐난다. 부모는 이미 자식을 조건 없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타인과 삶을 공유하며 함께 살게 되면 반드시 이익과 손해가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나의 편함은 타인의 불편함이 되고, 나의 자유는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 조건적인 사랑은 (태생적으로) 이렇게 이익과 손해가 충돌하는 현실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함께 살지 않으면 사실 부딪힐 일이 없다. 이익과 손해가 충돌할 상황이 없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되고, 자식을 낳아보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결혼 전에는 모두가 자신을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결혼해서 배우자와 이익과 손해의 충돌 속에서 싸우다 보면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자식을 낳아보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얼굴을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에 조건 없는 사랑은 아마도 부모가 자식을 향하는 마음뿐일지 모르겠다. 결혼생활에서 조건 없는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배우자 선택부터 우리는 조건 있는 사랑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바라며 배우자에게 불만을 터트리기보다 나는 배우자를 어떻게 대했는지 살피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일 수 있다.

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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