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청사초롱] 여름 단상



‘나는 여름이 좋다/ 옷 벗어 마음껏 살 드러내는,/ 거리에 소음이 번지는 것이 좋고,/ 제멋대로 자라나는 사물들,/ 깊어진 강물이 우렁우렁 소리 내어 흐르는 것과/ 한밤중 계곡의 무명천에/ 신이 엎지른 별빛들 쏟아져 내려/ 화폭처럼 수놓은 문장들/ 보기 좋아라 천둥 번개 치는 날/ 하늘과 땅이 만나 한통속이 되고/ 몸도 마음도 솔직해져/ 얼마간의 관음이 허용되는 여름엔/ 절제를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를 마구 들키고 싶고/ 내 안쪽 고이 숨겨온 비밀 몰래 누설하고 싶어라’(졸시 ‘나는 여름이 좋다’ 전문)

본격적으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그늘을 편애하고, 햇살이 숫돌 다녀온 왜낫처럼 벼려지고, 밤은 시들지만 낮은 싱싱해 웃자라고, 강물의 혀가 석 자나 자라고, 별들이 무한 생성하고, 마음의 장판지에 더러 곰팡이가 슬고, 개와 닭의 울음소리가 서럽게 들리고, 한낮의 고요가 잘 익은 살구씨처럼 단단해지고, 까닭도 없이 몸과 마음을 발가벗고 싶은 계절이다. 여름이 오니 소음이 여기 번쩍, 저기 번쩍, 하고 있다. 열어놓은 창으로 꼬맹이들이 놀면서 다투는 소리가 앞 다퉈 들려오고, 트럭을 몰고 다니는 잡상인들 스피커 소리가 맨발로 들어와 거실이며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린다. 공원 숲에서 이 가지, 저 가지를 넘나드는 새들이 공중에 흩뿌리는 소리의 방울도 또르르 굴러와, 휴일 한낮 모처럼의 한유를 즐기느라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발바닥 근처에 와서 머물고, 멀리 도로 바닥을 무두질하며 달리는 자동차 타이어가 내는 소리의 사금파리도 앙칼지게 유리창을 긁어대며 낮잠의 연한 피부에 생채기를 남긴다. 아직은 철이 아니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매미들 짝 찾는 소리도 번성하리라.

이래저래 여름은 사물과 인간이 피워내는 소음으로 귀가 쉴 틈이 없다. 낮이 지나고 밤이 오면 열린 창으로 행인들이 내는 발자국 소리며 두런거리는 말소리, 나뭇잎들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도 왁자지껄 들어와 집 안의 소음과 스스럼없이 섞이고 또 열린 창으로 갓 태어난, 바깥의 온갖 냄새가 들어와 실내에서 피워내는 냄새와 거리낌 없이 살을 문댄다. 달빛이라도 휘영청 밝은 밤에는 불 꺼진 거실이나 방마다 달빛이 기웃거리고, 갑자기 일기예보를 비웃듯 밤비가 내리면 베란다로 빗방울이 뛰어들기도 한다. 이렇듯 여름은 안과 밖이 내통하기 쉽고 하늘과 지상이 요란하게 운우지정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여름이 마냥 즐겁고 흥성스럽지만은 않다. 각다귀 떼처럼 달려들어 사람을 지치게 하는 더위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더위에 취약하다. 에어컨에 익숙한 생활 탓으로 조금만 더워도 참지 못하는 체질이 돼버린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길을 걷다가 인도에서 웅성대는 더위의 볼멘소리를 들었다. 무심코 고층건물에 들어갔다가 찬바람 싱싱 불어대는 에어컨 때문에 얼어 죽는 줄 알았다고 한 더위가 말하자 다른 더위가 말을 보탠다. 식당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한다. 그러자 다른 더위들이 이에 질세라 웅성웅성 목청을 높인다. 전동차, 기차, 지하상가, 백화점, 은행, 아파트, 관공서, 교실, 성당, 절, 극장가 등지에서 자신들을 만나면 죽일 듯 달려드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거리로 몰려나왔다며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도시에서 더위들이 머물 곳이라고는 거리와 광장과 운동장과 강변과 개천 바닥 그리고 가난한 독거노인들이 사는 쪽방촌밖에 없다는 거였다. 갈수록 영토가 줄어들어 천하를 호령하던 호시절은 다시 올 수 없을 거라며, 도시의 소음으로 매미들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진화하듯이 자신들의 성정이 톱날처럼 사나워져 가는 것은 오로지 제 육신 섬기는 데만 골몰하는 인간들의 이기적 욕망 때문이라고 성토하는 것이었다. 거리와 골목마다 우거지는 더위의 숲. 나는 인간에게 쫓기어 날로 광포해지고 있는 더위가 언젠가 떼 지어 날뛰는 날이 올 것만 같아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