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다. 냄새도 없고, 징후도 없다. 처음에는 느리게 퍼지지만, 어느 수위를 넘어가면 걷잡을 수 없다. 대유행의 단계에선 수많은 생명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치명적이다. 한 번 걸리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보다 무섭다. 슬금슬금 다가오다 갑자기 확 덮쳐서 한순간에 한 가정을 파탄 내는 건 일도 아니다. 최초 감염자에게서 접촉자(혹은 연관자)로, 그 접촉자의 접촉자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파괴력도 갖추고 있다. 이건 진짜 바이러스는 아니다. 하지만 더 지독하다. ‘신종 불평등바이러스’라 부를 수 있는 이것이 낳은 파편들은 이미 일상에 깊이 박히고 있다.
새벽 운동을 가는 수영장에는 늘 탈의실 바닥에 물기를 닦고, 뒷정리를 해주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여자 탈의실에 여자 두 분, 남자 탈의실에 남자 두 분이 각자 돌아가면서 새벽·오전-오후·저녁 근무를 교대로 했다. 코로나19의 1차 파도가 거세던 3월에 수영장은 문을 닫았었다. 5월에 개장했을 때 남자 탈의실에서 일하던 그분들은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남자 탈의실 바닥 물기는 회원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했다. 마침 집 근처에 사시는 한 분을 우연히 만났다. 간단한 안부가 오가고, 왜 수영장 일을 안 하시느냐 물었다. “코로나 때문에 잘렸어요. 그래도 나는 노인네라 괜찮은데, 한창 일해야 하는 수영강사들이 여럿 그만뒀어요.” 그러고 보니, 새벽 첫 강습이라고 해도 안전요원까지 네댓은 되던 강사가 세 명으로 줄었다. 이번에 다시 문을 닫았으니 또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
출근길 지하철역으로 가다 마주치는 공사장 가운데 두세 곳은 멈춰 있다. 마곡지구 개발 덕에 직장인, 인부로 들썩이던 인근 식당들은 휑하다. 종업원을 내보내고 사장 부부가 운영하는가 하면, 아예 폐업을 한 곳도 있다. 그나마 지방보다 돈이 도는 서울인데도 사정이 이렇다. 고향에서 자영업을 하거나 조그만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동창 단톡방에서 비명을 지른다. 일거리가 없어 몇 달째 강제 재택(실제로는 무급휴직)을 한다는 한 친구의 얘기를 다른 친구는 “그래도 해고되거나 회사가 문을 닫은 건 아니잖아. 나는 가게 접었다. 몇 달째 벌이가 없어 막노동이라도 해보려고 하지만, 그마저 쉽지 않다. 일손 부족한 농가를 알면 소개 좀 해줘”라는 하소연으로 받았다.
불평등바이러스는 코로나19처럼 ‘기저질환’을 안고 있는 이를 집중 공격한다. 그 기저질환은 우리 사회가 알면서 모른 체했던 ‘불안정한 일자리’ ‘낮은 소득’ ‘취약한 산업’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의 불평등 고리 안에 자리한 ‘낮은 곳의 사람들’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콜센터에서 일하다 확진된 한 여성의 ‘동선’은 슬펐다. 새벽같이 여의도 건물들을 누비며 녹즙 배달을 하고, 다시 콜센터로 출근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던 그의 동선은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불평등바이러스의 도래를 예고했다.
코로나19는 모두를 위협하지만, 불평등바이러스는 차별을 둔다. 더 약하고, 왜소한 부분을 공격한다. 중산층보다 저소득층, 청년층보다 고령층, 서울보다 지방을 겨냥한다. 불평등바이러스 공격에 일자리와 소득을 잃어버리고 위기로 몰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마저 벌어진다. 코로나19 퇴치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불평등바이러스는 그보다 더 길게 우리 경제·사회의 약한 고리를 잠식할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정부 예산안이 빚투성이라느니, 국가채무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50%에 육박한다느니 하면서 다투는 건 부질없다. 현재가 무너지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위기에 처한 ‘불평등바이러스 확진자’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