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0월 8일] 직분은 섬김이다



찬송 : ‘너 주의 사람아’ 328장(통 374)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로마서 11장 13절


말씀 :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자처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보내신 사도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사도의 직분을 최고로 영광스럽게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헬라어 성경으로 이 말씀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에서 직분이 헬라어로 ‘디아코니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디아코니아는 ‘섬김’이라는 뜻입니다. 직분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섬김이라는 말을 직분의 뜻으로 쓰고 있다니 뜻밖이었습니다. 우리말 성경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헬라어로 읽어보니 이 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말씀에서만 그렇게 썼는가요. 이럴 때 성구 사전이 요긴합니다. 성구 사전을 펼쳐 들고 직분이라는 말을 살펴봤더니 사도 바울은 한 번도 예외 없이 ‘디아코니아’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의도적으로 이 말을 쓰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걸 알고 나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는 성경을 읽어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성경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깊은 묵상에 잠겼습니다.

나중에 미국 풀러신학교 김세윤 교수님의 책을 보니 상세한 설명이 나와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관직을 가리키는 말에 ‘아르케’ ‘아르콘’ ‘티메’ ‘텔로스’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교회의 직책을 말할 때 그런 용어를 일체 피하고 일부러 ‘디아코니아’라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따라서 직분자는 ‘디아코노스’입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섬김이’입니다.

당시 사회는 권세나 직책을 높은 자리에 올라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높은 자리에 올라 떵떵거리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회적 통념을 혁명적으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는 것이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뭇 사람들을 섬기는 것임을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막 10:45)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든 전도자든 예언자든 집사든, 교회의 모든 직분은 ‘섬김의 직분’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 모든 직분은 ‘섬김의 직분’이 되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교회에서 직분자들이 권위를 내세우거나 대접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거나 무슨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 적이 있었나요. 그럴 때 교회의 직분은 디아코니아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는지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이렇게 바꾸어도 됩니다. ‘나는 섬김의 직분을 최고로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기도 : 하나님, 저희를 겸손한 섬김의 직분자로 세워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오종윤 목사(군산 대은교회)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