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7월 11일] 가난한 자가 소유하는 천국



찬송 : ‘맘 가난한 사람’ 427장(통 516)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


말씀 : 가난을 깊이 성찰했던 현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누가 가난한 사람이고 누가 부자일까요.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이고 적게 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들 생각하지요. 실상은 그렇지 않답니다. 스스로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사람, 바로 그이가 가난한 사람입니다. 반면 스스로 이미 많은 걸 가졌다고 생각하기에 더 바랄 게 없는 사람이 부자이죠. 가난과 부유함은 소유에 달린 게 아니라 마음에 달려 있답니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봤습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일까, 아니면 부자일까.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산상보훈은 팔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마태복음 5장 1~3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팔복 중 처음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천국을 소유할 것이라는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소유하게 될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누구인지 궁금해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해 하는 것처럼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애타게 찾는다는 것이지요. 일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애타게 찾고 부르짖는 자가 결국 하나님을 만나고 그가 곧 천국 백성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청빈으로 이해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가난이나 불가피한 운명으로서의 가난이 아니라, 거룩한 가치를 위한 선택적 가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고한 신앙의 선진들은 땅에 보물을 쌓은 게 아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땅의 욕심을 다 내려놓고 가난을 벗하는 이가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니 이 또한 제법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본래 예수님의 의도는 갈릴리 가난한 백성에게 희망의 말씀을 선포하신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가난함이 천국을 소유하는 축복에 대한 자격과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해져야 천국 백성이 되고 심령이 가난하게 될 때 천국을 선물로 받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난할지라도 걱정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위로라는 겁니다. 가난할지라도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격려가 이 안에 담겨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또한 일리 있습니다.

갈급한 심령을 소유한 가난한 자들이 됩시다. 우리 마음과 생각과 의지와 욕심을 가난하게 비워 그곳으로 주님을 초청합시다. 땅에 보물을 쌓은 부자가 아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은 천국의 부자를 꿈꿉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남들보다 좀 덜 가질 수도 있겠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용기를 잃지 마세요. 부끄러워할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위대한 천국을 소유한 넉넉한 사람들이니까요.

기도 : 축복의 하나님. 부자로 살지만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가난하게 살며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모든 매임으로부터 천국의 자유와 평강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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