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트루디 (21) 세계 침례교 총회장 된 남편 “어려운 일에 쓰임 받고 싶다”

트루디(왼쪽) 사모가 2000년 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제18차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당선된 남편 김장환 목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2000년 1월 호주 멜버른에서 전 세계 침례교 대표 1만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8차 세계침례교연맹 총회가 열렸다. 이날 남편은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세계 침례교 총회장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누렸다. 1억 5000명이 넘는 세계 침례교인을 대표하는 한국인 목사라니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나 또한 가족들과 함께 남편의 취임을 보기 위해 동행했다. 남편은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걸 꺼려 하는 사람인데 이날만큼은 침례교인들의 축하를 받으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눈치였다. 총회장으로 선출될지 모르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지금껏 남편이 하는 모든 일에 동행해 주셨으니 이번 일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주세요. 설령 총회장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주님 뜻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남편은 “총회장이 되면 하나님께서 유용하게 쓰시도록 어려운 일에 순종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치곤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남편이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때 열성적으로 통역을 맡았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많은 이들이 복음을 알게 됐고 목사와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나는 남편이 총회장 선출로 그런 일이 다시 한번 재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됐다.

한국에 돌아온 뒤 주변에 지인이 세계침례교총회장에 당선된 걸 축하한다면서 고급 승용차를 선물했다. 남편은 평소에 작은 경차를 타고 다녀서 청와대나 정부기관에 들어갈 때면 번번이 입구에서 막힐 때가 있었기 때문에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거절하겠다는 뜻으로 “기름값을 대주면 타겠다”고 말했는데 그분이 한 달에 기름값 명목으로 50만원씩 통장에 부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남편은 외국에서 손님이 올 때나 청와대에 갈 일이 생기면 그 차를 이용했다.

“유명해지니까 좋은 점도 많네요. 이런 고급 승용차를 또 언제 타보겠어요.”

나는 남편이 총회장 당선 이후 우쭐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오히려 나에게 옆눈으로 보더니 “혹시 총회장 부인이라고 누구에게 덕 볼 생각일랑 하지 말아요”라며 주의를 줬다.

남편 역시 혹시 내가 우쭐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남편이 총회장이 됐으니 행동이 더 제한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목사 남편과 살면 우쭐해질 일이 애당초 없다.

사람들은 “목사님이 그렇게 유명해지니 사모님은 얼마나 좋느냐”라고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사람이 유명해지는 게 그 사람의 영혼에 유익한 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총회장에 당선된 것이 내게는 외국에 나갈 일이 더 많고 지금보다 더 바빠진다는 것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었다.

예상대로 총회에서 돌아오자 남편은 여기저기 인터뷰 요청이며 집회 초청에 참석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남편이 총회장이란 지위를 내세워 누군가에게 대접받는 걸 본 적이 없다. 남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회자가 된 이후에도 신앙의 초심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아서 늘 주님께 감사하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