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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장요나 (3) 이단에 빠진 간호장교 구해줬더니 결혼하자며…
장요나 선교사가 1968년 7월 베트남 나트랑에서 십자성 부대 감찰부에 근무할 때 찍은 사진. 그 간호장교라면 나도 보고 들은 바가 있었다. 옷차림은 수수한데 스타킹은 찢어진 걸 신고 다니고, 옷도 사 입지 않고 헌 옷만 고집했다. 병원 피엑스에서 박카스 병을 줍고 다녀서 한눈에 봐도 이상해 보였다. 그녀는 중위, 나는 사병이었다. 아무리 명령에 살고 죽는 군대라지만 상사를 이단에서 빼 오라는 명령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간호장교를 만났다. 이단 종교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는데 간호장교는 ...
입력:2020-03-03 11:10:01
[역경의 열매] 장요나 (2) 한·일회담 반대시위서 학교 대표로 혈서 써
장요나 선교사(오른쪽)가 1962년 여름 대학교 친구들과 찍은 사진. 그날 밤 할머니는 내게 그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다 해주셨다. 나는 장손도 아니었다. 위로 형이 두 명 있었는데 모두 콜레라로 잃었다고 했다. 나도 약골로 태어나 얼마 못 살 것으로 생각하고 아랫목에 누여 놨는데 신통방통하게 살아났다. 친엄마는 나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하셨다. 나는 집을 나오기로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충실하시라 하고, 나는 아버지 도움을 받지 않고 돌아가신 친엄마의 아들로만 살기로 했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선생님 댁에 남았다. ...
입력:2020-03-02 11:10:01
[역경의 열매] 장요나 (1) 고 2때 자는 척 하다 엄마가 계모인 것 알고 충격
31년째 베트남에서 사역하는 장요나 선교사가 최근 성경책을 들고 베트남 국기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나는 일제강점기의 끝자락인 1943년에 태어났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비켜난 시골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린 시절은 넉넉하고 따뜻하게 보냈다. 내 고향 충남 보령군 웅천은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어릴 적 살던 접동골은 대대로 황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지만, 타성바지인 우리 집이 그 동네에서 가장 잘 살았다. 머슴을 열두 명이나 둘 정도로 부유했다. 독실한 신자였던 부모님은 집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교회에 다니셨다. 읍내에 하나밖에 없는 교회에 ...
입력:2020-03-01 11:10:01
[역경의 열매] 김우정 (11·끝) 현지 의료·행정 인력들 잘 양육하는 게 우리의 꿈
헤브론병원 의료선교사들과 직원들이 병원 로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헤브론병원의 마스터플랜은 없었다. 예산도 세울 수 없었다. 후원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현장 상황에 반응하며 여기까지 왔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통해 당신의 계획을 이루고 계신다. 우리는 2018년 병원 창립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경험한 하나님의 이끄심을 토대로 헤브론병원의 비전과 미션을 정했다. 비전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사람을 세워가는 병원이다. 미션은 크리스천 의료진들을 잘 세워가는 병원, 암·...
입력:2020-01-30 11:05:01
[역경의 열매] 김우정 (10) 수술 후 폐에 물이 찬 아이… 기도와 간호로 살려내
김우정 헤브론병원 원장이 캄보디아 한 시골 마을에서 어린이 사역을 마친 후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사람을 붙여주신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최기주 간호사가 그런 경우다. 2014년 심장센터가 문을 열고 분당 서울대병원 심장수술팀이 왔을 때 팔로사징후(TOF)라는 복합적인 심장기형을 가진 7세 여아 쓰레이삣이 있었다. 수술은 잘됐지만 폐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폐에 물이 차면 죽을 수도 있다. 팀은 돌아갈 시간이 됐고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팀은 돌아가면서 이 아이는 아무래도 어렵겠다고 했다. 심장...
입력:2020-01-29 11:05:01
[역경의 열매] 김우정 (9) 열악한 의료환경에도 모든 것 채워주시는 하나님
헤브론병원 의료선교사들이 오전에 큐티(QT)를 하고 있다. 헤브론병원 제공 의료환경이 미흡한 선교지에선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개골 뚫을 외과용 드릴이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치과용 드릴을 준비해 주셨다. 마취 의사가 없으니까 환자를 성령의 임재 가운데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셨다. 어느날 23세쯤 되는 청년이 병원을 찾았다.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만성중이염 같다고 했다. 캄보디아에선 만성중이염 환자가 많다. 고막이 다 녹아 물처럼 흐른다. 이들에게는 인공고막 성형수술을 한다. 귀 뒤쪽 피부 안에는 ...
입력:2020-01-28 11:10:02
[역경의 열매] 김우정 (8) 헤브론 병원 후방에서 지원하는 ‘위드헤브론’ 설립
김우정 원장이 지난해 12월 위드헤브론이 주최한 감사의 밤에서 의료선교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헤브론병원 제공 2013년 헤브론병원을 돕는 비영리법인 ‘위드헤브론’을 설립했다. 이전 ‘헤브론 캄보디아 의료선교회’가 확대된 셈이다. 위드헤브론은 후원자 관리와 후원 행사를 주관하면서 헤브론병원을 후방에서 지원한다. 이전에는 후원자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 1년 중 10개월은 캄보디아에 있다 보니 한국 쪽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홈페이지 업데이트도 못하고 1년에 세 번 정도 선교 보고 편지를 쓰는 게 고작이었다. 어떻게 해야 ...
입력:2020-01-27 11:05:01
[역경의 열매] 김우정 (7) 심장 수술 받은 아이들 성적 떨어지면 과외도 시켜
2015년 2월 간호대학 부지에서 헤브론병원 의료진들이 기도하고 있다. 헤브론병원 제공 2009년 7월 무학교회에서 병원 건축을 위한 후원의 밤이 열렸다. 그날은 서울시가 강우량을 측정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비가 온 날이었지만 후원의 밤은 성황리에 열렸다. 2013년 12월 심장센터와 간호대학 설립을 목표로 두 번째 후원의 밤을 했을 때도 많은 분이 호응해 주셨다. 하지만 그날 목표 금액 20억원을 말씀드렸을 땐 일시에 분위기가 조용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큰 금액이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후원의 밤...
입력:2020-01-22 11:10:01
[역경의 열매] 김우정 (6) 병원 모습 갖춰지자 훈련된 의료진 필요해
심장수술에 앞서 준비 중인 헤브론병원 심장센터. 수술방 3개를 만들기 위해 쌓던 벽돌을 헐고 방 하나를 크게 늘렸다. 심장수술도 할 수 있는 큰 수술방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심장수술실에는 의료진 열두세 명이 들어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환자 앞에 의사가 4명, 간호사 3명이 있어야 하고 마취 의사, 마취 간호사가 필요하다. 수술하는 동안 심장과 폐 역할을 하는 인공 심폐기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도 전담 인력 2명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최소 11명이 필요하다. 5년 후 실제 그곳에서 심장수술이 진행됐다. 캄보디아에 병원을 세우다 보니 우리는 통관 ...
입력:2020-01-21 11:10:01
[역경의 열매] 김우정 (5) 건축비도 부족한 상황에 미리 증축할 생각까지…
캄보디아 헤브론 병원 전경. 처음에 설계된 병원은 연건평 3305㎡(1000평) 규모의 3층 건물이었다. 연못을 흙으로 메꾼 지반이 약한 곳이라 파일(Pile·말뚝)을 많아 박아야 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에게 필요한 30㎝x30㎝, 9m 길이의 파일은 구하기 어려워 병원 마당에서 직접 제작해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초공사하면서 혹시라도 나중에 공간이 모자라 증축이 필요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증축할 수 있도록 기초와 기둥을 튼튼히 하기로 했다. 여기에 돈을 많이 들였다. 또 3...
입력:2020-01-20 11:05:01
[역경의 열매] 김우정 (4) “한국서 용한 의료진이 왔다”… 환자들로 북새통
헤브론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진료시간을 밤새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고 있다. 헤브론병원 제공 처음 헤브론병원은 조그마한 별장같은 집을 리모델링한 클리닉이었다. 의료장비도 별로 없고 한국 의료인 4명, 캄보디아 직원 5명의 아주 작은 규모였다. 개원한 지 한두 달 되니 환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무료인데다 외국 의사들이 진료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잘 낫는다는 소문 때문에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뤘다. 가난한 캄보디아 환자들이 의사를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을 때였다. 시골 할머니들이 작은 방에 가득 들어와 방 안 온도가 32도까지 올라갔다. ...
입력:2020-01-19 11:05:03
[역경의 열매] 김우정 (3) 망설이던 아내 “당장 병원문 닫고 캄보디아 가자”
관광지에서 찍은 김우정 원장과 아내 박정희씨 모습. 맞장구를 쳤다. “맞아. 성령님이 주신 생각이야. 우리가 교회에서 크고 결혼하고 리더도 됐잖아. 그동안 병원도 잘되고 물질적인 복도 잘 누리고 살았잖아. 이제는 복을 나눠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캄보디아에서 살면 어떨까.” 젊어서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부모님이 북한 실향민 출신이어서 의사가 된 후에는 북한 의료선교에 쓰임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캄보디아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캄보디아에 소아과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지 계속 이야기했다. ...
입력:2020-01-16 11:10:01
[역경의 열매] 김우정 (2) 소아과 의사로 잘 나가던 어느 날…
김우정 원장(앞줄 맨 왼쪽)이 2007년 1월 충무교회 단기팀과 대나무 평상 기차를 타고 캄보디아 뽀삿지방에서 오지마로 들어가고 있다. 헤브론병원 제공 재수할 때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아버지와 큰 형은 “역사는 무슨 역사냐. 의대가 괜찮아 보이는데 그거 해라. 가톨릭 의대도 괜찮다더라”고 하셨다. 이후 생각 없이 계획 없이 재미 없이 의예과를 다녔다. 관심은 인문학이었다. 반독재 데모도 많이 했다. 마냥 그렇게 살 수는 없어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다.1978년 2월 졸업과 함께 군의관으로 입대했다. 81년 4월 제대하고 서울성모병원에...
입력:2020-01-15 11:05:01
[역경의 열매] 김우정 (1) 청년시절 나는 교회 죽돌이였다
김우정 원장(오른쪽)이 헤브론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고 정기 검진차 방문한 어린이 및 부모들과 포즈를 취했다. 헤브론병원 제공 2007년 9월 개원하고 두어 달쯤 지났을 때였다. 퇴근했다가 볼 일이 있어 밤 9시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았다. 병원 문 앞에 30여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캄보디아 프놈펜도 많이 발전해 저녁에도 병원 주변이 북적거린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인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알고 보니 이들은 다음 날 아침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온 환자들이었다. 캄보디아도 여러모로 발전했다. 이에 따...
입력:2020-01-14 11:10:01
[역경의 열매] 김인숙 (16·끝) 내 여생의 과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오른쪽 세 번째)가 지난해 11월 20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협약 30주년 기념 포럼’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는 역경이 두려웠다. 환난이나 고난 같은 단어는 피하고 싶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예수님 십자가 고통의 진정한 의미도 알지 못했다. 원인 모를 질병에 걸렸던 남편이 3년 만에 확진을 받았다. 파킨슨병이었다. 남편은 13년간 이 무서운 병과 고투했다. 온 가족이 함께 아팠다. 2004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2년 후 남편이 떠났다. 얼마 뒤엔 30여년 헌신한 일터를 ...
입력:2020-01-13 11:10:01
[역경의 열매] 김인숙 (15) ‘가장 작은 자를 위한 더 나은 세상 만들기’ 선언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뒷줄 왼쪽 네 번째)가 2018년 12월 22일 서울 중구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본인의 책 ‘이렇게 살아도 행복해’ 출판기념회에서 센터 관계자들과 함께했다. 2009년 12월 30일 나는 오랫동안 일해 온 일터를 떠났다. 수많은 고비가 있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내 일이 천직이자 성직이라 생각했기에 힘든 줄 몰랐다. 정든 일터를 떠나 못다 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새로운 일터로 주님의 인도를 받는 데 2년이 걸렸다. 아동인권 운동을 하며 20여년 함께한 동료가 있다. 2003년부터 10년 넘게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위원으로 활...
입력:2020-01-12 11:10:01
[역경의 열매] 김인숙 (14) 유엔 “한국, 아동인권 인식 낮다” 권고문에…
아동 대표들이 2003년 11월 17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아동권리주간 선포식’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내의 아동인권과 유엔아동권리협약 인식 증진을 위해 국내외로 다니며 애썼지만, 변화는 쉽지 않았다. 협약 비준국은 비준 2년 후 첫 번째 협약 이행보고서를 쓴다. 이후 5년마다 국가가 이행보고서를 쓰면, 비정부기구(NGO)는 이에 대한 민간 보고서를 쓴다. 국제 사회는 정부보고서와 민간보고서를 기반으로 각 정부의 협약 이행을 심의한 뒤 권고문을 보낸다. 우리 정부는 당시 두 번에 걸쳐 국가 보고서를 제출했다. ...
입력:2020-01-09 11:10:01
[역경의 열매] 김인숙 (13) 경제 발전 이룬 한국, ‘세이브더칠드런 한국’ 세워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오른쪽 세 번째)가 미얀마 호수촌에 학령 전 아동보육시설을 세운 뒤 마을 주민과 함께했다. 6·25전쟁으로 우리나라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각국 정부와 민간단체가 나서 큰 도움을 줬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전쟁 직후인 1953년 아동복리회(SCF)란 이름으로 구호사업을 했다. 70년대엔 한국지역사회복리회 이름으로 미국 AID 원조를 받아 농촌 지역개발사업을 펼쳤다. 나는 이 현장에서 일하며 사업신청서와 중간보고서, 최종 결과보고서 및 모니터링과 평가서를 쓰는 훈련을 받았다. 세이브더칠드런 미국은 미국 AID...
입력:2020-01-08 11:15:01
[역경의 열매] 김인숙 (12) 남편·두 아들 응원에… 온 세계 다니며 아동 인권 공부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오른쪽)가 1995년 모리셔스에서 열린 유엔아동권리협약 훈련 워크숍 중 스웨덴 참가자와 환담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채택 이후 유엔과 비정부기구(NGO)는 협약 이행 촉구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이 일에 내가 속한 단체가 선두주자였다. 세이브더칠드런은 1995년 협약을 알리고 훈련할 수 있는 도구인 ‘유엔아동권리협약 훈련 키트’를 개발했다. 아동 인권과 그 역사, 협약을 현장에서 훈련하고 대중에 전파하는 자료였다. 그해 세이브더칠드런 연맹총회는 아프리카 섬나라 모리셔스에서 개최됐다. 닷새 만에 ...
입력:2020-01-07 11:05:01
[역경의 열매] 김인숙 (11) 아이 스스로 삶에 목소리 내도록 ‘아동 힘 키우기’ 돌입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오른쪽 두 번째)가 2002년 12월 서울 강남구 수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제3차 동아시아·태평양지역 아동·청소년 포럼’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내 삶은 작은 자 중에서도 가장 작은 자, 전쟁고아를 돕는 일로 시작했다. 긴급구호가 필요한 시기에는 자선이 불가피하다. 그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나는 긴급구호 단계를 넘어 주민의 잠재력을 끌어내 자립을 도왔다. 낙후된 지역사회 개발과 아동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서다. 주민이 힘을 키워 삶의 변화를 이끌고 아동의 행복...
입력:2020-01-06 11:10:01
[역경의 열매] 김인숙 (10) 낙후된 농촌서 조정역 맡아 지역사회 개발에 앞장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왼쪽)가 1983년 5월 미국 국무부 초청 프로그램에 참여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문화센터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낙후된 농촌과 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 개발사업 ‘살기 좋은 지역사회 만들기’는 주민의 힘 키우기 활동으로 시작된다. 당시 농촌 지역 주민은 순수했다. 특히 여성들이 그랬다. 주민 힘 키우기 사업은 ‘비형식 교육훈련’으로 진행된다. 이때 강사는 촉진자 역할을 한다. 촉진자의 진행으로 주민들은 마음을 열고 자기 생각과 느낌을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지역사...
입력:2020-01-05 11:05:01
[역경의 열매] 김인숙 (9) 늘 꿈꾸던 이웃 위해 ‘변화 인자’ 되는 길 찾다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오른쪽 두 번째)가 1986년 충북 괴산 송면의 아동과 지역 초등학교, 중학교 급식사업을 후원한 미국인 후원자 릭 라산드로(왼쪽 두 번째)씨와 해당 초등학교 앞에서 함께 한 모습. 1965년 우리 대학 졸업예정자 98%가 현모양처를 장래희망으로 꼽았다. 나는 전문직 여성이 되고 싶었다. 졸업예정자는 마지막 학기에 ‘직업과 여성’이란 특강을 들었다. 이를 강연한 총장은 여성이 전문 직업인으로 일하려면 3가지에 탁월해야 한다고 했다. 건강과 지적 능력, 투철한 사명감이다. 난 모두를 갖췄다고 자신했다. 신체 건강...
입력:2020-01-02 11:10:01
[역경의 열매] 김인숙 (8) 중학교 시절 받았던 배려·존중… 내 안에 인권 싹 터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왼쪽)가 1960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이화여고 농구선수로 뛰고 있다. 어릴 때부터 기도를 듣는 하나님을 믿었다. 준비된 사람을 쓰는 하나님, 기도를 듣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내 삶의 기반이다. 나는 활력이 넘치는 아이였다. 늘 뛰고 뛰어놀았다. 심부름 갈 때도 뛰었다. 어머니가 새벽에 동태찌개를 끓일 때 두부가 없으면 집에서 먼 가게로 내가 뛰어갔다. 냉장고도 없고 마트나 편의점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어디다 정신을 팔고 뛰었는지 두부를 사려는데 돈이 없었다. 분명 손에 들고 왔는데, 아뿔싸! 오던 길로 더 ...
입력:2020-01-01 11:15:01
[역경의 열매] 김인숙 (7) “아이는 모두 다르다”… 교회서 아동인권 감수성 배워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오른쪽)가 1978년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남편, 두 아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서울로 올라온 우리 가족은 동향인이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로 갔다.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다시 고향으로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부산에서 임시로 천막을 치고 예배드리던 평양교회는 서울로 올라와 ‘시온교회’란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교회엔 평양과 진남포 등지에서 살다 홀로 남하해 의지할 곳 없는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어머니는 예배 후 애찬 준비에 정성을 다했다. 교회에서 먹는 한 끼로 하루를 사는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입력:2019-12-31 11:15:01
[역경의 열매] 김인숙 (6) 다섯 남매, 주님 은혜로 모두 원하는 중학교 입학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앞줄 오른쪽 두번째)와 가족이 1984년 아버지 생신에 여동생 및 셋째 남동생 가족과 함께한 모습. 큰 오빠와 막내 가족이 이민 간 후엔 두 동생 가족과 함께 부모님 곁을 지켰다. “주님의 동산 아름다운 산, 우리의 집은 아름답고 좋도다.… 주님이 계신 곳, 평화의 동산.” ‘주님의 동산’이란 이 찬양의 가사는 참 아름답고 영감을 준다. 한 가정을 이끄는 리더십은 부모에게 있다. 외적 리더십과 내적 리더십의 조화는 이 노랫말처럼 가정을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산으로 이끈다. 우리 집은 한국...
입력:2019-12-30 1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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