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경의 열매] 원응두 (8) 신앙 지키려고 물려받을 재산까지 포기하고 집 나와
- 원응두(원 안) 장로가 믿음의 고향인 중문교회 교인들과 야외예배를 드리고 기념촬영을 했다. 제주도엔 ‘당 오백, 절 오백’이라는 속설이 있다. 신당(神堂)이 500여곳, 절이 500여곳이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무속신앙과 불교가 판을 치고 있었다. 예전에 제주에서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웠다. 교회가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한 핍박도 심했다. 제주 사람들은 대부분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겼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땐 무당에게 가서 굿을 하곤 했다. 우리 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 입력:2023-03-19 14:05:01
- [역경의 열매] 원응두 (7) 믿음의 싹 틔운 중문교회… 주님 위한 봉사는 늘 ‘기쁨’
- 1915년 2월 24일 창립된 제주 중문교회 초창기 모습. 중문교회는 2025년이면 설립 110주년을 맞는다. 1915년 2월 24일 창립 예배를 드렸다. 신앙 선배들의 땀과 헌신, 희생의 피를 흘린 결과였다. 항일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신 믿음의 용사가 계셨고 4·3사건과 6·25전쟁 속에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믿음의 선배들이 지키고 섬겼던 자랑스러운 교회다. 신앙 선배 중에는 오공화 장로님이란 분이 계셨다. 나에게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신 분이다. 중문교회 초대 장로로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온갖 열정을 쏟으셨다. 얼마나 열심히 전도했던...
- 입력:2023-03-16 14:10:01
- [역경의 열매] 원응두 (6) 뒤늦게 현역 입대했지만 몸 약해 1년 넘게 병원 신세
- 원응두 원로장로가 입대 당시 중문교회 청년들과 촬영한 송별 사진. 뒷줄 왼쪽 네 번째가 원 장로. 1956년 6월 6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현충기념일(현충일)에 국민의 3대 의무인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를 결심한 날이기 때문이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징집통지서를 받았지만 입대를 결정했다. 화순항에서 대형 선박을 타고 목포로 향했다. 목포에서 화물열차를 타고 논산 훈련소에 도착했다. 곧바로 신체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폐디스토마’라는 질병으로 불합격 판정을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
- 입력:2023-03-15 14:10:01
- [역경의 열매] 원응두 (5) 질병 속에 만난 그리스도… 모두 계획된 ‘하나님의 섭리’
- 원응두 원로장로가 성경 최고의 구절로 꼽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고 묵상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말씀이 뼈가 되고 살이 된다는 것을 체험했다. 나는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동안 고통스럽고 아팠던 몸이 서서히 회복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마음의 병이 나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건강을 되찾았다. 몸도 많이 회복되고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많은 사람이 경...
- 입력:2023-03-14 14:10:02
- [역경의 열매] 원응두 (4) 몸이 아파 좋아하게 된 책 읽기… 유독 ‘예수님’에 끌려
- 원응두 원로장로가 1992년 5월 23일 제주 중문교회에서 찍은 아내 김춘년 권사 취임 기념사진. 왼쪽 위 작은 사진은 1955년 결혼 기념사진. 나는 역사적인 혼돈의 시대에 예수님을 만났다. 놀라운 기적을 맛보았다. 특히 제주도라는 시골에서 기독교를 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사람이 교회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교회에 갔다. 성장기에 먹을 게 없어 궁핍한 시절을 보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교회에서 주는 사탕과 선물을 얻는 재미로 동네 아이들과 교회에 간 것이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였다. 그때가 유년 주일학교 ...
- 입력:2023-03-13 14:10:01
- [역경의 열매] 원응두 (3) 폭도들에 끌려가 죽을 뻔… 곡식·가축까지 모두 빼앗겨
- 원응두 장로가 제주 4·3공원에서 4·3사건 때 행방불명된 사촌 형 비석 옆에 팔을 기대앉아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그야말로 해방은 새벽같이 왔다. 1945년 8월 15일. 내가 열한 살 되던 해였다. 마침내 대한민국이 일제의 35년간의 압박 속에서 벗어난 날이다. 그러나 해방을 맞았으나 그 기쁨의 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2년 뒤 4·3사건이라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을까. 4·3사건은 아주 잔혹한 사건으로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설상가상으로 3년 후엔 6·25전쟁으로 인한 ...
- 입력:2023-03-12 14:10:01
- [역경의 열매] 원응두 (2) 일제시대 학교서 개명 강요… 한겨울엔 맨발 등교까지
- 제주 중문초등학교 21회 동기들과 은사님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했다. 뒷줄 왼쪽 두 번째가 원응두 장로. 나의 어린 시절은 일제의 압박을 당하던 민족의 수난 시기였다. 어렵사리 초등학교에 입학해 보니 너무나 신기했다. 선생님이 하신 첫 마디가 ‘조선말을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했고 여러 가지 과목도 일본어로 배웠다. 교복도 일본 군인들이 입는 옷과 색깔이 비슷했다. 모자도 마찬가지였다. 성명도 일본식 이름으로 바꿨다. 모든 것을 일본식으로 하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
- 입력:2023-03-09 14:10:01
- [역경의 열매] 원응두 (1) 제주 중문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70여년 신앙의 길
- 제주도 서귀포시 색달동 제주중문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비 앞에 선 원응두 장로.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끝이자 시작점이다. 내외국인을 망라해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여행하고 싶어하는 곳이다. 눈을 감으면 푸른 바다와 부드러운 한라산, 탐스러운 귤이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맑고 깨끗한 공기와 노란 유채꽃과 빨간 동백꽃 등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이 나그네의 지친 마음을 치유해준다. 서귀포시 중문은 우뚝 솟은 한라산을 뒤로 한 정겨운 마을이다. 이곳은 관광단지가 있어 제주를 여행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얀 눈...
- 입력:2023-03-08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20·끝) 누군가를 위해 주춧돌 놓는 수고 감당하고 싶어…
- 집무실의 정근 원장. 정 원장은 “‘하면 된다’의 마음으로 재난 현장을 가고 북한 선교에 나섰다”며 “‘고달픈 나그넷길 가면서 이름도 없이 헌신한 누군가가 했음’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삶은 변화무쌍했다. 우유죽을 먹으려고 눈을 뜨면 학교로 달려가던 개구쟁이 정근, 마른 몸이 부끄러웠고 결핵 때문에 병원을 들락날락하던 청소년기 우울한 정근, 리어카에 이삿짐을 싣고 산복도로를 다니던 가난한 청년 정근, 무슨 일이든 해내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던 의대생 정근, 조직 개혁에 ...
- 입력:2023-03-07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19) “고통 받는 곳에 하나님의 믿음·평화 지키려 달려왔노라”
- 정근 원장이 튀르키예 하타이주 이스켄데룬에 마련된 난민 캠프에서 현지 주민의 건강을 살피고 있다. 정 원장과 그린닥터스는 지난달 17일부터 24일까지 지진 피해를 본 튀르키예에서 긴급의료봉사에 나섰다. 그린닥터스의 행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022년 5월 우리는 폴란드로 향했다. 폴란드는 러시아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어 가장 많이 모인 곳이었다.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16명의 의료지원단은 8박 9일 동안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 난민캠프에서 의료지원에 나섰다. 갑작스럽게 피란길에 올라 평소 복용하던 ...
- 입력:2023-03-06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18) 재난 현장이면 국내외 어디든 달려가는 그린닥터스
- 정근(왼쪽 두 번째) 원장이 2015년 대지진이 발생한 네팔 현장에서 그린닥터스 의료진, 봉사자들과 현지 주민들을 돌보고 있다. 그린닥터스는 북한은 물론 재난 현장이면 국내외 어디든 갔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을 강타한 지진은 10m 넘는 집채만 한 파도를 만들며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태국 등 해안가 마을을 강타했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진 사람, 무너진 건물 등을 뉴스로 보자마자 결심을 굳혔다.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은 피해가 가장 컸음에도 반군이 장악한 지역이라 갈 수 없어 스리랑카로 향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
- 입력:2023-03-05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17) 복지와 인권 사회문제 해결하고 싶어 시작한 정치 도전
- 정근 원장이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뒤 지역 시장을 돌며 상인과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초긍정으로 살던 내 삶에 세 번째 실패가 왔다. 낡은 정치판을 바꾸는 동시에 지치고 고달픈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의욕적으로 내민 도전장, 바로 정치였다. 30여년간 지역에서 다져온 신뢰를 토대로 복지와 인권 사회문제 해결에 내 역량을 사용하고 싶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정치 도전은 내 인생의 실패한 순간 중 하나가 됐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오전에는 진료를 보고 오후엔 발품...
- 입력:2023-03-02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16) 협력병원 건립… 서원했던 선교지 북한의 결핵 퇴치 나서
- 정근(오른쪽 여섯 번째) 원장이 2007년 개성협력병원 개원식에서 남북 관계자, 의료진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2006년 의미 있는 결실도 맺었다. 남북 당국과 그린닥터스 등 3자가 ‘개성공업지구 의료시설의 건설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개성공단 내 의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응급진료소가 아닌 ‘개성공업지구 종합진료소(병원)’를 세우기로 했다. 개성협력병원이었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한반도엔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협력병원 건립은 멈추지 않았다. 그해 12월 첫 진료를 시작했고 2007년 4월 개...
- 입력:2023-03-01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15) 개성공단에 병원 세우고 땅끝 북한 선교의 꿈 펼쳐
- 정근(가운데) 원장이 2004년 그린닥터스 관계자 등과 함께 북한의 개성공단에 세워질 병원 부지를 둘러본 뒤 함께 기도하고 있다. 대학교 2학년 때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겨울수련회에서 서원한 것도 착실히 준비했다. 땅끝인 북한 선교였다. 본격적으로 북한을 바라게 된 건 2004년 평안북도 신의주 용천 폭발사고다. 긴급 속보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린닥터스가 할 수 있는 건 적십자사를 통해 의약품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이때부터 북한을 돕기 위한 연결고리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그해 여름 개성공단이 건설을 완료했다는 뉴스가 TV에서 나왔다. ‘그린닥터...
- 입력:2023-02-28 14:05:01
- [역경의 열매] 정근 (14) 종합메디컬센터 온종합병원, 서면을 의료관광 중심지로
- 정근 원장이 2010년 3월 세운 온종합병원은 서면 일대를 의료 중심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병원 이름인 ‘온’은 따뜻함, 완전한 치유와 생명의 불을 켠다는 의미가 있다. 왼쪽 작은 사진은 도로에 설치된 ‘서면메디컬스트리트’ 이정표. 부산을 메디컬타운으로 만들려는 도전에도 나섰다. 지금은 부산의 도심지가 된 서면에 2008년 종합병원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부산진구도 서면 일대를 의료관광특구로 개발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와 의사가 뜻을 합하면 의료계 신성장동력을 육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의료관...
- 입력:2023-02-27 14:05:01
- [역경의 열매] 정근 (13) 부산 지역 의료 감당… 그린닥터스, APEC 의료지원
- 부산시의사회 법제이사였던 정근(맨 오른쪽) 원장이 2000년 의사 파업을 철회한 뒤 정부에 의사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궐기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의사로 살던 나에게 조직을 경험할 기회도 생겼다. 안과의사회 소속으로 일하던 중 2000년 부산시의사회에서 상임이사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다. 제안을 받자마자 든 생각이 ‘술’ 자리였다. 단체 일을 하면 사람을 만나야 하고 술자리로 이어졌다. 정중히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부산시의사회 박희두 부회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거듭된 설득에 별수 없이 수락했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 입력:2023-02-26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12) 그린닥터스 출범… 국가·인종·종교 초월한 인류애 실현
- 그린닥터스는 2016년 9월 경주시 내남면 보건지소에서 지진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주민 200여명을 진료했다. 정근(앞줄 오른쪽 세 번째) 원장이 그린닥터스 관계자 등 의료봉사 동참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02년 중국에 다녀온 직후 백양의료봉사단은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그해 부산 YMCA 김길구 반송복지관장이 “YMCA의 국제봉사클럽 와이즈멘을 설립하자”고 했다. 김 관장은 나와 같은 백양로교회 출석 성도로 교류가 많았다. 그의 조언대로 중국에서 함께 봉사한 의료진을 중심으로 같은 해 11월 부산서면 와이...
- 입력:2023-02-23 14:05:01
- [역경의 열매] 정근 (11) “사람 고치는 일이 먼저다, 수술비는 걱정하지 말라”
- 정근 원장은 IMF 외환위기가 있던 1997년 백양로교회와 함께 의료 취약 계층을 돕기 위한 백양의료봉사단을 만들었다. 정 원장이 2002년 봉사단의 첫 해외 선교지인 중국에서 안과진료를 하고 있다. 1997년 시작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나에게 새로운 곳에 시선을 두도록 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두가 힘들었다. 기업은 쓰러지고 직장을 잃은 가장은 거리로 내몰렸다. 우리 병원도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50만 달러에 리스한 라식 기계의 월 이자만 800만원이던 게 2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위기를 어떻게 견뎌냈나 싶을 정도로 아찔...
- 입력:2023-02-22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10) 연대 보증 1억 떠안게 돼… 안과 개원으로 정면 돌파
- 정근(가운데 하얀 가운 입은 사람) 원장이 1994년 부산 서면의 작은 건물 3층에 개원한 ‘정근 안과’는 2013년 정근안과병원으로 승격됐다. 사진은 정 원장 등이 승격 감사예배와 함께 건강검진 센터 확장을 기념하며 테이프를 자르는 모습. 내 인생에 두 번째 시련은 부산대 의대 교수로 잘나가던 시절 찾아왔다. 군의관 시절 보증을 서준 사람이 부도를 내면서 연대 보증 책임을 떠안게 됐다. 갚을 돈은 1억원이었고, 월급은 가압류됐다. 당시 대학교수 월급 10년 치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할 만큼 큰 돈이었다. 시련은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다. ...
- 입력:2023-02-21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9) 정주영 회장과 만남은 북한 선교 예비한 하나님의 계획
- 정근 원장이 레지던트 1년 차였던 1986년 당시 여자 친구였던 본과 4학년 윤선희 원장과 부산대병원에서 찍은 사진. 두 사람은 1년 뒤인 1987년 결혼했다. 전공의 시절 특별한 만남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만남은 1987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대학교병원 안과 전공의인 나는 갑작스럽게 울산현대해성병원으로 가야 했다. 해성병원 안과 과장이 개원하며 나갔고 과장 자리가 비었다. 안과 의사가 귀하던 때라 해성병원은 적임자를 구하지 못했고 부산대 병원에 안과 전공의 파견을 요청했다. 28살 전공의 2년 차인 나는 졸지에 해성병원 안과 과장 직무대행...
- 입력:2023-02-20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8) 예수님 본받아 시력 잃은 사람들에게 광명 되찾아 주리라
- 정근 원장이 지난 12일 부산 부산진구 온종합병원의 국제진료소를 찾은 러시아 국적 외국인 노동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 환자는 광각막염 진단을 받고 응급치료를 받았다. 1985년 인턴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 나와 동기들은 인생의 진로를 결정해야 할 갈림길에 서 있었다. 레지던트가 되면 전공과목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의학도에게 인기 있는 과목은 내과였다. 병을 낫게 하고 사람을 살리니 실력 있고 소신 있는 의학도가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컸다. 모두가 선택을 고민할 때 나는 예외였다. 이미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바...
- 입력:2023-02-19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7) 주어진 일엔 언제나 “Yes”… 어느새 ‘의국해결사’로 소문
- 정근(가운데) 원장이 인턴 생활을 하던 1985년 부산대학병원에서 의대 동기, 환자와 히포크라테스상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누군가 인생에서 가장 바쁘게 살았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의대 시절이라 말할 것 같다.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자취방을 나와 학교에서 종일 강의를 듣고 도서관으로 옮겨 밤늦게까지 책 속에 파묻히는 생활을 6년간 반복했다. 1985년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생활이 시작됐다. 보통 전문의가 되려면 인턴 1년, 레지던트 3년을 거쳐야 한다. 인턴 1년간 하나의 전공과에서 1~2주씩 있으면서 모든 진료과목을 배우고 레지던트 과정...
- 입력:2023-02-16 14:05:01
- [역경의 열매] 정근 (6) 하나님 만나 구원의 확신 얻고, 첫 사랑 여학생과 결혼
- 정근 원장이 군의관 훈련생 시절이던 1989년 경북 영천 훈련장에 면회 온 아내 윤선희 원장과 찍은 사진. 학교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87년 결혼했다. 의대에 입학한 나는 열심히 생활비를 벌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놀기도 열심히 놀았다. 데모에 앞장서고 저녁이면 의대 동기들과 술 한 잔을 즐겼다.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현장에도 있었다. 그런 내 삶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두 번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서다. 첫 만남은 1980년 의예과 2학년 때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휴교한 사이 단짝 친구의 달라진 모습을 봤다. 나처럼 수줍음도 많...
- 입력:2023-02-15 14:05:01
- [역경의 열매] 정근 (5) 의대 입시 준비하며 시작된 부산생활, 이젠 ‘제2의 고향’
- 정근 원장은 1979년 부산의대에 입학한 뒤 40년 넘게 부산에 살고 있다. 대학 1학년 때 캠퍼스에 있는 무지개다리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1978년 부산에서 재수 생활을 하면서도 ‘서울에 가야겠다’는 마음은 여전했다. 생각을 바꾼 건 개인적인 상황 때문이었다. 장남인 나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을 고려해야 했다. 학비가 저렴한 국립대인 부산대학교 의학과로 진로를 바꿨다. 더구나 도시 생활은 촌사람에게 낯설었다. 첫 대입 때 잠깐 경험한 서울 사람은 깍쟁이처럼 여겨졌고 ‘나는 여기서 못 살겠다’는 마음을 갖기도 했다. 나의 첫 ...
- 입력:2023-02-14 14:10:01
- [역경의 열매] 정근 (4) 생사 오가던 결핵환자에서 결핵협회장으로 인생 역전
- 대한결핵협회장이던 정근 원장이 2014년 협회 60주년사를 준비하면서 100주년 기념교회 옆에 있는 캐나다 선교사인 셔우드 홀 박사 공적비를 찾아 기도하고 있다. 추락의 시간 중에도 재수 생활은 계속됐다. 재발한 결핵 때문에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도 힘들었을 때였다. 고등학교 동기들이 대학에 입학해 학교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후회의 마음이 들었다. “의대를 지원하지 않았으면 나도 대학생이었을 텐데”하는 자책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한 시절이 결과적으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지금 내 명함엔 부산의대 교수,...
- 입력:2023-02-13 1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