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근 (18) 재난 현장이면 국내외 어디든 달려가는 그린닥터스

정근(왼쪽 두 번째) 원장이 2015년 대지진이 발생한 네팔 현장에서 그린닥터스 의료진, 봉사자들과 현지 주민들을 돌보고 있다.


그린닥터스는 북한은 물론 재난 현장이면 국내외 어디든 갔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을 강타한 지진은 10m 넘는 집채만 한 파도를 만들며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태국 등 해안가 마을을 강타했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진 사람, 무너진 건물 등을 뉴스로 보자마자 결심을 굳혔다.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은 피해가 가장 컸음에도 반군이 장악한 지역이라 갈 수 없어 스리랑카로 향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의 스리랑카는 더 이상 찬란하게 빛나지 못했다.

현지에서 사역 중인 한국인 선교사 도움으로 골시티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진 책상 3개와 의자를 가져와 침상을 만들었다. 20분 만에 진료소를 차리고 기도와 함께 진료를 시작했다. 땀이 비 오듯 흘러도 끝없이 몰려드는 환자들이 있어 멈출 수 없었다. 클리코다 지역에선 불교 사원에서 진료를 봤다. 스님과 기독교 선교사, 의료진들이 어우러져 서로를 도왔다.

2005년 10월 7.6 규모의 강진이 몰아친 파키스탄에도 그린닥터스는 어김없이 갔다. 정부가 긴급 의료봉사단 출국을 불허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다. 재난현장인 카슈미르의 무자파라바드와 칼라코트는 건물 하나 없이 모든 게 파괴됐다. 가는 길도 험난했다. 산사태로 도로가 유실되고 토사가 마을을 뒤덮기도 했다. 병원엔 병상이 부족해 환자들은 복도나 마당에 이불만 덮은 채 누워 있었다.

사실 파키스탄에 가기 전 집에 남겨두고 온 게 있었다. 파키스탄은 재난 지역인 데다 탈레반 점령지였다. 항상 하던 일인데도 낯선 느낌이 들어 아내에게 쓴 유서를 서랍장에 두고 왔다. 미국에서 연수 중이던 아내는 후에 서랍장에서 유서를 발견하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아내는 늘 재난현장에 간 나와 봉사자 안전을 위해 새벽이면 일어나 기도했다. 지금도 아내는 나와 함께 의료봉사에 동행한다.

2008년엔 사이클론이 덮친 미얀마와 대지진이 발생한 쓰촨성 현장에도 갔다.

늘 재난 현장에 발 빠르게 달려간 나였지만 2015년 네팔 대지진 때는 유독 굼떴다. 그런 나를 일깨운 건 김정용 원장이다. 그는 개성병원 초기인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북한 근로자를 돌봤다. 그런 분이 그린닥터스 단체 대화방에 ‘네팔 지진으로 다들 가고 있다. 우리에게도 기회를’이라는 글을 올렸지만 나는 망설였다.

갈 의료진이 없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가슴을 옥죄는 듯했다. 결국 의료진을 모집하고 도움을 줄 선교사와도 연결했다. 수도인 카트만두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피해지역을 찾아다녔다. 의료봉사를 마치고 떠날 때 마음에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네팔 재건에 작은 디딤돌 하나라도 놓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3개월 뒤 ‘네팔 드림 프로젝트 의료봉사단’을 이끌고 네팔로 와 7박 8일간 현장을 누볐다. 이후 네팔에 학교와 보육원 병원을 세우며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느 곳이든 세우고 필요한 곳에는 어떤 방법이든 가게 하신다는 걸 알게 됐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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