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의미 있는 결실도 맺었다. 남북 당국과 그린닥터스 등 3자가 ‘개성공업지구 의료시설의 건설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개성공단 내 의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응급진료소가 아닌 ‘개성공업지구 종합진료소(병원)’를 세우기로 했다. 개성협력병원이었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한반도엔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협력병원 건립은 멈추지 않았다. 그해 12월 첫 진료를 시작했고 2007년 4월 개원식도 열었다.
협력병원은 기존 응급진료소의 5배 크기인 120평 규모의 단층 건물이었다. 합의서에 명시된 대로 진료소는 남측진료소인 그린닥터스 개성병원과 북측 진료소로 구분했다. 대신 방사선실 검사실 수술실 등은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남북 진료소 가운데 설치했다. ‘효율적인 진료’를 이유로 설득한 덕에 검사실 등은 남북 의료진이 모두 사용하도록 했다. 출입구와 진료소는 달라도 검사실이 뚫려 있으니 자연스럽게 공동 진료의 틀도 갖추게 됐다. 응급환자나 중환자는 남북 의료진이 함께 진료했다.
종합병원의 틀을 갖추면서 진료과목도 응급의료 수준에서 격상됐다. 내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결핵과는 물론 치과 진료도 가능해졌다. 북측진료소에서는 고려의학을 선보였다.
의료진 확보도 수월해졌다. 남측진료소엔 내과 1명, 외과 2명 등 3명이 상주 근무했고 요일별로 정형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형외과 치과 결핵 등 전문 과목 의사들이 순환 진료를 했다. 북측에서도 의료진 14명이 상시 배치됐다.
주요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을 파견했고 국경일과 공휴일에는 대한의사협회와 그린닥터스 의료진이 특별 진료했다. 협력병원은 개성공단에만 머물지 않고 개성시와 사리원시로 활동 범위를 확장했다. 2009년부터 사단법인 광주선한의료들 팀이 개성 시내 출장 진료도 실시했다.
협력병원이 역점을 둔 또 다른 활동은 북한의 결핵퇴치 사업이다. 2008년 1월 결핵연구원의 도움으로 결핵 진단 장비와 시설이 협력병원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진료와 치료에 들어갔다. 그린닥터스 공동주최로 북한 어린이결핵퇴치 운동도 추진했다.
어릴 적 결핵에 걸리면서 의사의 길을 걷게 된 나로선 선교지로 서원한 북한의 결핵 퇴치에 나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2008년 4월 개성종합병원 설립 계획도 세웠다. 개성공단 내 3000여평 부지에 종합병원을 설립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을 향한 계획은 2006년 1차 북핵 실험에 이어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2009년 2차 핵실험에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린닥터스는 2012년 아쉬움 속에 개성에서 철수했다. 2016년엔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별명이 있다. ‘정다르크’다. 개성공단에서 숱한 어려움에도 병원을 지키려고 애쓰던 나를 그린닥터스 회원과 후원자들이 잔 다르크에 빗대 만들어줬다. 지금도 나는 그 별명이 언젠가 다시 불리기를 소망하고 있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