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중국에 다녀온 직후 백양의료봉사단은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그해 부산 YMCA 김길구 반송복지관장이 “YMCA의 국제봉사클럽 와이즈멘을 설립하자”고 했다.
김 관장은 나와 같은 백양로교회 출석 성도로 교류가 많았다. 그의 조언대로 중국에서 함께 봉사한 의료진을 중심으로 같은 해 11월 부산서면 와이즈멘을 조직했고 이듬해 YMCA 내 의료봉사조직인 그린닥터스를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 국가 인종 종교를 초월한 인류애를 실천하자는 의미를 담은 ‘그린’과 ‘닥터’를 조합해 떠올린 이름이었다.
그 사이 백양 의료선교단은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눈길을 돌렸다. 부산 지역의 각 대학병원 원목과 기독신우회 회장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슬쩍 제안했더니 부산백병원 신우회 회장인 오무영 교수가 취지에 공감했다. 오 교수는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진료해 주는 게 의료인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라며 힘을 실었다. 참석자들도 생각을 같이했다. 2003년 6월부터 백양의료봉사단의 이주노동자 무료진료 사업을 시작했고 비공인 민간 외교관 역사를 톡톡히 했다.
이렇게 외국인 의료봉사, 해외의료 봉사라는 백양의료봉사단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닥터스 조직을 짰다. 동참을 요청받은 이들이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2004년 2월 부산롯데호텔에서 구호단체인 YMCA그린닥터스가 출범했다.
백양의료봉사단이 서면 와이즈멘클럽을 거쳐 그린닥터스가 된 셈이다.
시작할 때는 연합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YMCA를 그린닥터스 앞에 붙였다.
1년 뒤엔 YMCA 요청에 따라 YMCA 명칭을 빼고 재단법인 그린닥터스로 보건복지부에 정식 등록했다. 이후 그린닥터스는 부산을 거점으로 서울 울산 대구 경남 경기 등 국내 지부를 비롯해 미국의 뉴욕과 미주리, 캐나다, 아프리카, 러시아 등 15개 해외 지부를 두는 국제단체로 성장했다.
재난 현장은 그린 닥터스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 국가 인종 종교를 초월해 인류애를 실현하자는 초심을 잃지 않고 2004년 스리랑카 쓰나미부터 2015년 네팔 대지진까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갔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있는 폴란드, 최근 강진으로 무수한 사상자가 발생한 튀르키예로도 달려갔다. 북한 개성병원 운영도 도왔다. 국내에서도 2016년 경주 지진 등 재난지역과 취약계층을 찾아가 의료봉사를 했다. 코로나 기간엔 부산 대구 지역에 기부 물품도 전달했다.
나에겐 이런 봉사를 통해 새로운 비전과 결실을 경험하게 했다. 백양의료봉사단의 첫 선교지인 옌볜에서 본 땅끝은 의대 2학년 겨울 수련회 때 하나님을 만나고 북한 선교를 서원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뜻밖의 결실도 있었다. 중국에서 함께 봉사한 정근안과의 송부근 부장은 봉사 후 교회에 다니게 됐고 지금도 매주 일요일 온종합병원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진료하고 있다.
2006년 12월엔 성산 장기려선생 기념사업회와 부산과학기술협의회가 제정한 성산 장기려상의 봉사부문 첫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