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원응두 (4) 몸이 아파 좋아하게 된 책 읽기… 유독 ‘예수님’에 끌려

원응두 원로장로가 1992년 5월 23일 제주 중문교회에서 찍은 아내 김춘년 권사 취임 기념사진. 왼쪽 위 작은 사진은 1955년 결혼 기념사진.


나는 역사적인 혼돈의 시대에 예수님을 만났다. 놀라운 기적을 맛보았다. 특히 제주도라는 시골에서 기독교를 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사람이 교회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교회에 갔다. 성장기에 먹을 게 없어 궁핍한 시절을 보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교회에서 주는 사탕과 선물을 얻는 재미로 동네 아이들과 교회에 간 것이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였다. 그때가 유년 주일학교 시절이었다. 선물과 먹을 것을 주는 교회가 좋았다. 나는 원래 예수를 안 믿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 교회에 열심히 나가지는 못했다. 결국 교회와 멀어졌다.

어려서부터 병을 달고 살았다. 가난으로 영양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에 병치레를 많이 했다. 열아홉 살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았다. 당시 제주에는 병원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한의사가 있어서 침술로 병을 고치던 때였다. 부모님들은 내 병을 고쳐보겠다고 민간요법을 썼고 심지어 굿도 했다. 하지만 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 보려고 백방으로 애를 쓰셨지만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병명은 폐디스토마와 늑막염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폐디스토마의 경우 5년 정도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료가 된다고 믿고 있었다. 늑막염 역시 일종의 유행성 병으로 알고 있었다. 나중에는 고산이라는 곳에 있는 병원에 찾아갔으나, 병을 고치지 못하고 그냥 아픈 채로 지냈다. 그래도 늑막염은 다른 한의원에서 물을 빼냈다. 나는 병을 치료하지 못한 채 그렇게 몸이 아픈 상태로 그냥 하루하루 고통 가운데서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밖에서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노는 것보다 혼자 책 읽기를 좋아했다. 돈이 생기면 먹을 것을 사 먹는 대신 틈틈이 책을 구해 읽었다. 책이 흔치 않은 때라 많은 종류의 책은 없었다. 하지만 구할 수 있는 대로 책을 구해 읽었다. 몸이 아프니까 오히려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특히 철학과 종교 서적에 눈길이 갔다. 예수 석가모니 무함마드 등 위인전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중에 유독 예수님에 관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예수님에 관한 책을 읽는 중에는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에 관한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해도 쉬웠다. 의심이 생기거나 믿지 못하겠다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그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병중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라면 빼놓지 않고 읽었다. 그때마다 교회 유년 주일학교에 다니던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빨리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6·25전쟁 당시 전란을 피해 제주도로 피란 온 분을 만났다. 이웃에 살던 그분이 동네를 다니며 노방전도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책도 한 권 주었는데 ‘요한복음’이라는 빨간 쪽복음이었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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