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트루디 (25) 비장애·장애 아이들, 한데 어울려 더불어 사는 법 배워

트루디 사모가 1995년 수원 중앙기독유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깔모자를 쓰고 생일파티를 하고 있다.


수원 중앙기독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장애·비장애 학생들을 통합 교육한다. 기독교 교육은 모든 아이에게 공평한 교육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유치원을 개원한 지 12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한 초등학교 국어 교사가 나를 찾아왔다.

“중앙기독유치원이 지역 학부모들에게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꽤 났더군요. 하지만 제가 가르치는 장애 아이들은 특별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장님이라면 장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해주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교사를 통해 뒤늦게 깨달음을 얻게 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유치원이 지역에서 좋은 소문은 났지만, 정작 소외된 학생들을 품고자 하는 일에 소홀했던 건 아닌지 돌아봤다.

이듬해 특수 교사를 채용하고 장애 학생 9명이 입학했다. 처음엔 비장애 학생들과 따로 반을 구성했지만, 비장애·장애 아이들이 한데 어울리면 서로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았다. 각 반에 장애 아이를 한 명씩 배치했다.

아이들은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을 함께 공유하며 서로에게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장애가 없는 아이는 몸이 불편한 아이를 돕고, 장애가 있는 아이는 옆 사람과 더불어 생활하는 법을 배우며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했다.

비장애 학생 학부모 중에도 이를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변에선 “비장애 학생 학부모들의 반대가 심하지 않으냐”고 묻곤 했지만, 유치원을 옮기기는커녕 항의 한 번 하는 학부모도 없었다.

물론 장애·비장애 학생을 통합 교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설 면에서도 그렇고 인력 활용 면에서도 비용과 노력이 두 배로 든다. 하지만 나와 요셉 목사는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라는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생명을 모두 돌보겠다고 결심했다.

입학 후 첫 통합 수업을 할 때면 교사들은 반 아이들과 난파선 놀이를 한다. 배가 가라앉는다는 설정 아래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 여럿이 함께 참여하는 놀이다. 각 팀에는 시각 장애인과 신체장애인이 한 명씩 있다고 가정한다. 배의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해 고무줄을 손으로 높이 든다. 배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이 고무줄을 건드려선 안 된다.

“일단 몸이 불편한 애부터 내보내야지.” “아니야. 눈이 안 보이는 애가 혼자 남으면 안 되잖아.”

놀이를 시작하면 마치 정말로 난파선에 갇힌 아이들처럼 누구를 먼저 구하고 어떻게 해야 많은 생명을 구할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게임의 정답이 궁금했다. 제일 먼저 건장한 아이가 혼자 힘으로 배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배 안에 있던 아이들이 힘을 합해 시각장애인과 신체장애인을 구출해낸다. 대개는 한두명이 구출되는 과정에서 시간이 종료된다. 이를 지켜보는 교사들은 숨을 죽이고 아이들의 구출 작전을 마음으로 응원한다.

어른인 교사들의 도움 없이도 아이들은 제일 먼저 누구를 구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약한 사람을 먼저 도와야 한다”는 희생정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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