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순흥 (2)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우울증… 성경 말씀 통해 극복

장순흥(오른쪽) 한동대 총장이 1969년 서울 경복고 재학시절 학교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1969년 청와대 옆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있는 경복고에 진학했다. 열심히 공부했더니 좋은 성적이 나왔다. 공부에 자신감이 붙었다. 문제는 70년 초 겨울방학 때 발생했다. 문득 인생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생겼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못해도, 잘 살아도, 못 살아도 결국은 죽음이다.’ 갑자기 허무감이 밀려왔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슬럼프가 시작됐다. 내가 아무리 성공적인 삶을 살아도, 훌륭한 삶을 살아도 결말은 딱 한 가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음뿐이구나. 결국, 내 삶의 시나리오는 내 노력으로 내 맘대로 쓸 수 있지만 죽음이라는 결론은 선택할 수 없다. 이건 언젠가 내게 닥쳐올, 너무도 분명한 확실한 결론이다.’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었다. 그럴수록 우울증의 수렁에 빠져들어 갔다.

그 당시 나의 심리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은 톨스토이의 ‘참회록’에 나온 우화였다. 사자에 쫓기던 사람이 우물 속으로 피하지만 우물 속에는 커다란 뱀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우물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겨우 매달렸는데, 잡고 있는 관목 가지를 쥐가 갉아 먹는 상황이었다. 그때 그는 나뭇잎 끝에서 떨어지는 꿀을 핥아 먹으며 순간의 달콤함을 만끽한다.

딱 내 모습이었다. 허무주의와 우울증에 빠졌던 나는 콜라에 빠져들었다. ‘톨스토이의 우화에 나오는 인간이 죽음 앞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꿀맛에서 행복을 느꼈다. 나한테는 콜라 맛이 그런 거네.’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콜라가 주는 순간의 시원함과 달콤함이 위로를 줬다.

그렇지만 콜라 맛의 기쁨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었겠는가. 한낱 탄산음료로는 공허함을 채워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울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이 시작된 3월 첫째 주일 서울 덕수교회를 내 발로 찾아갔다. 어쩌면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예배당 벽에 붙어 있던 큼지막한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나는 마치 자석에 고정된 듯 오랫동안 그 구절을 읽고 또 읽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요한복음 3장 16절을 펼쳐 놓고 계속 들여다 봤다.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고 이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후 오랜 시간 깊은 묵상으로 이어졌고 이 말씀을 통해 마침내 믿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한 가닥 삶의 희망이 보였다. ‘아, 이거다. 이게 해답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실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독생자를 믿음으로써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고, 또 멸망치 않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길을 가겠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나를 지배하고 있던 허무주의와 우울증은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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