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순흥 (3) 고등부 회장 맡아 무료 수업해가며 전도에 매진

장순흥 한동대 총장이 고등부 학생회장을 맡던 시절 서울 덕수교회. 당시 교회는 서울 중구 조선일보 자리에 있었다.


1970년 3월 주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을 받은 순간부터 우울감은 사라졌다. 늘 공허했던 마음이 채워졌다. 내면의 풍요 속에서 감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교회를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한 그다음 주일은 마침 고등부 회장을 뽑는 날이었다. 당시엔 고등부에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별로 없었다.

“새로 나온 순흥이가 회장을 맡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고등부에도 새로운 피가 수혈돼야 합니다.” 학생들과 고등부 선생님은 나를 회장으로 추천했다. 아마 내가 의욕에 가득차 보였던 것 같다. 그렇게 엉겁결에 30명이 출석하는 덕수교회 고등부의 회장직을 맡게 됐다.

교회에 제대로 다니지 않다가 회장을 맡았으니 그 자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회장은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주보를 만들어야 하지.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좋은 건 고등부 회원을 많이 늘리는 거야.” ‘아, 무작정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오면 되는구나.’

아기가 첫걸음마를 떼듯 겨우 교회에 첫발을 디딘 나는 2주 만에 학생 전도라는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마치 다윗이 어떠한 준비나 무기도 없이 골리앗을 처음 만났듯 회장이라는 직책과 함께 아무런 지식이나 경험도 없이 전도라는 사명 속에 던져졌다.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전도에 매진했다.

당시 나는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 고등부 학생회장을 맡으면서 아이들에게 수학과 과학을 토요일 오후에 무료로 가르쳤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면서 전도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굿 뉴스 포 모던 맨’(Good News for Modern Man)이라는 영어 성경을 함께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전도도 절로 되고 수학과 영어 실력은 더 늘게 됐다. 2살 많은 누나의 수학 숙제도 해주면서 용돈까지 벌었다. 그 돈으로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주면서 전도는 빛을 발했다. 그 결과 고등부가 90명까지 불어났다.

전도를 열심히 했던 특별한 원인이나 이유는 없었다. 그냥이었다. 이상하게 전도가 즐겁고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처음 사용하게 됐던 첫 전도이자 훈련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달란트니 전도니 그런 것도 모르고 그저 회장이니까 아이들을 교회에 많이 데리고 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전도라는 공부와 훈련을 시키신 것 같다.

그해 7월 경기도 양평으로 고등부 여름수양회를 갔다. 강사는 훗날 덕수교회 담임목사님이 되신 당시 손인웅 강도사님이었다. 그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주제로 로마서를 강해했는데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복음을 확고하게 전해주셨다.

1970년은 내 인생에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해 3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으로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7월은 로마서 강해로 믿음의 은혜를 받았다. 이제 와서 보니 그때의 성경 공부가 내 믿음을 성경 말씀 위에 굳건히 서게 했고, 내 일생을 이끌어가는 믿음의 자산이 됐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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