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순흥 (7) 시험 예상문제 모두 적중… “완벽한 모범답안” 교수 칭찬

장순흥(왼쪽) 한동대 총장이 1978년 나상천 박사와 미국 매사추세츠주 MIT 메인홀 앞에서 찰스강을 바라보고 있다.


유학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복음을 전했던 일이다. “혹시 제가 성경에 대해 5분간 이야기해도 될까요. 아시다시피 미국 문화가 기독교 문화이고 성경의 문화잖아요.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책인 성경은요….” 아무리 불신자라 하더라도 성경 이야기를 짧게 해주겠다고 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때는 복음 전하는 일이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복음을 전하는 순간이 정말 기뻤으며 행복한 마음으로 충만했다. 보스턴의 많은 유학생을 보스톤한인교회로 인도했다.

1977년 매주 전도에 힘쓰다 보니 어느새 첫 학기 전공 필수인 핵물리 과목의 시험이 돌아왔다. 주일은 종일 예배드리고 전도한 유학생을 돌보다 보니 시간이 빠듯했다. 기숙사에 돌아오니 저녁 9시30분이었다. 시험 범위는 300쪽이었다. 공부는 해야 하는데, 가슴이 턱 막혔다.

‘하나님, 제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곳 MIT까지 유학을 왔습니다. 그런데 시험 성적이 나쁘게 나오면 학업도 게을리하면서 미쳐서 전도만 한다는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기도를 마치고 책을 폈다. 그리고 내가 만약 교수님이었다면 어떤 문제를 냈을까 생각하면서 5개 문제를 만들어봤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답안을 일목요연하게 써 내려갔다. 2시간 이내에 마칠 수 있었다.

다음 날 시험시간이 됐다. 미국인 동급생들도 밤을 새운 눈치였다. 그 친구들은 워낙 체력이 좋다 보니 며칠간 밤새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시험 문제를 받았다. ‘세상에, 내가 어제 뽑았던 5개가 거의 그대로 나왔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미리 정리했던 내용을 술술 풀어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감사와 뿌듯함이 밀려왔다.

며칠 후 교수님이 답안지를 돌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미스터 장, 완벽해요. 어떻게 내가 생각하는 모범답안을 그대로 적었습니까. 유학 온 지 얼마 안 돼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합니다.” 교수님이 학생들 앞에서 추켜세우는 데 감사의 기도만 나왔다.

물론 유학 생활은 고됐다. 문득 고향이 그립고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그리웠다. 하지만 일시적 감정이었다. 남의 고민을 도와주고 복음을 전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어려움을 겪는 다른 유학생을 돕다 보면 내 고민을 할 시간도 없었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나만의 공부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단시간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던 것도 문제 해결 중심의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오늘 배운 내용 중 핵심은 무엇일까. 무엇이 문제이고 그 문제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수님이 시험 때 문제를 내신다면 어떤 문제를 낼까.’

일례로 역사 시간에 임진왜란을 배웠다면 단순히 사건 발생 연도와 정황만 외우는 암기식이 아니라 왜 이런 전쟁을 맞이했고 앞으로 제2의 임진왜란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나만의 대비책을 짜봤다. 그렇게 문제 중심의 공부를 하던 78년 1월이었다. 보스턴에 눈이 많이 온 어느 날이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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