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순흥 (8) 선배 전도하다 선배 여동생에게 마음 “저와 평생을…”

장순흥(오른쪽) 한동대 총장이 1979년 11월 미국 보스톤한인교회에서 김경미(오른쪽 두 번째)씨와 결혼예배 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왼쪽은 당시 MIT 경영대학원에 다니던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아내 김영명씨.


1978년 1월 MIT가 있는 미국 보스턴에는 눈이 많이 왔다. 식료품점을 찾아갔지만 음식이 모두 팔렸다. 총각 유학생들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식사를 해결했다.

나는 끼니도 해결하고 전도도 할 겸 MIT 선배 집에 갔다. 저녁 시간이었는데 선배가 반갑게 맞이했다. 식사 후 곧바로 전도에 들어갔다. 선배의 여동생은 사과를 깎으면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당시 선배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없었다. “선배님,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선배님을 향해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과 네가 믿는 하나님이 다르지 않잖아.” “그런 관념적인 하나님 말고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유, 그런 옹졸한 하나님이라면 안 믿겠네.”

밤새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분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천국행이 결정됩니다.”

선배는 구원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배보다 내 이야기에 더 깊은 고민을 한 것은 선배의 여동생이었다. 나보다 세 살 위였다. 몇 번 만나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자매가 사람을 무척 편하게 해준다. 혹시 나와 평생 함께할 배우자는 아닐까.’ 그래서 용기를 내서 프러포즈했다. “혹시 저와 평생을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 “예….”

79년 11월 아버지는 멀리 미국까지 아들의 결혼식을 위해 직접 와 주셨다. 미국 보스톤한인교회에서 은혜로운 결혼예배를 드렸다. 신혼집은 학교 부근 아파트에 잡았다. 81년 2월, 첫째 아들 노아를 낳았다. 그리고 그해 5월 박사학위를 받고 MIT를 졸업했다.

곧바로 미국 벡텔사에 입사했다. 벡텔사는 한국에 4개, 대만 2개, 미국 4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설계·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원자력 발전소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체 과정을 경험했다. 현장에 나가보니 MIT의 기술력이 기업보다 훨씬 앞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나에겐 원자력 발전소 설립, 건설, 허가, 운전이라는 완전한 기술 자립의 원대한 꿈이 있었다. 순수 대한민국 기술로 세계에 우뚝 서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단순 물리학에만 머물지 않고 원자력 전체 시스템을 익히는 데 주력했다.

당시 보스턴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MIT에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유학 생활을, 하버드대에는 도올 김용옥이 공부하고 있었다.

유명 인사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훌륭한 분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김인수 고려대 교수님과 김수지 이화여대 교수님 부부는 정말 좋은 신앙인으로 훌륭한 인격을 가진 분들이었다. 또한 성경공부를 같이했던 유학생도 많았다. 훗날 이분들은 한국교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유학생 수련회인 코스타(KOSTA) 태동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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