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순흥 (9) 한국서 원자력공학과 설립 소식에 사표 내고 귀국

장순흥(가운데) 한동대 총장이 1981년 5월 졸업가운을 입고 미국 보스턴 MIT 교정에서 아내 김경미(오른쪽)씨, 장평훈 박사와 함께했다.


1977년부터 81년까지 보스턴 유학 시절 믿음의 동역자를 많이 만났다. 특히 MIT에는 믿음 좋은 한국 유학생이 많았다. 처음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 만난 분 중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분들이 있다. 박사 후 과정에 있던 김인수 교수와 그의 부인 김수지 교수다.

이분들은 신실한 크리스천 리더로서 성경공부에 열심을 다했다. 김 교수 부부와의 인연은 한국에 와서도 카이스트에서 계속됐다. 같이 공부하던 조준호 선배는 공부가 끝난 후 보스톤한인교회 장로가 되어 보스턴 교계 활동을 열심히 했다.

MIT에 온 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또 다른 믿음의 형제를 만났다. 나보다 1년 늦게 온 노희천 박사다. 노 박사 역시 인연이 카이스트까지 계속됐다. 훗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카이스트에서 만난 김영길 김인수 교수, 노희천 박사는 나와 더불어 카이스트 기독 모임을 이끄는 핵심 멤버가 됐다.

특히 김영길 교수를 도와 창조과학회를 태동시켰고 한국 땅을 넘어 전 세계에 하나님께서 펼치신 창조질서를 과학적으로 변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훗날 김영길 교수와 노 박사는 온누리교회 창립과 더불어 한동대학교 개교에도 큰 역할을 했다.

보스턴으로 유학 온 장평훈 박사는 MIT 기독 유학생을 모아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 장 박사는 훗날 카이스트에서 다시 만났다. 장 박사의 주선으로 홍정길 목사님이 매년 MIT를 방문해서 성경을 가르쳐 주셨다. 이 만남은 유학생 사회에서 그 범위가 확대됐고 훗날 코스타(KOSTA·국제복음주의 학생연합회)의 기초가 됐다.

많은 사람이 과학과 신앙을 이분법적으로 별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훌륭한 과학자 중에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많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질서의 위대함과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믿으며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이분들과의 만남이 한평생 과학자이자, 신앙인으로서 나의 삶에 큰 도움이 됐다.

박사 과정을 마친 후 벡텔사에서 1년간 일하는데, 고국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 홍릉 카이스트에서 원자력공학과를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아,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길이다.’

당시 어머님의 병환으로 걱정하던 터라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시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원자력 기술 자립을 위한 인재 양성과 기술 개발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카이스트에 원서를 냈다. 며칠 뒤 한국에서 교수로 채용됐다는 연락이 왔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그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을 최우선에 놓고 나머지는 부수적으로 열심히 했을 뿐인데, 이렇게 복을 주시는군요. 주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한 일보다 더 많이 부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벡텔에 사표를 내고 귀국 절차를 밟았다. 82년 나는 당시 최연소로 카이스트 교수에 임용됐다. 28세의 나이였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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